지난 1일(한국시간) 미국의 주요 도시 한 자동차 매장 앞에는 수백m의 긴 줄이 늘어섰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보급형 세단 ‘모델3’ 예약 주문을 위해서였다. 일부는 노숙까지 불사했다. 일주일간 주문량은 무려 32만5000대, 금액으로는 140억 달러(약 16조2000억원)를 넘어섰다. 단일 품목으로 일주일간 거둔 사상 최대 실적이다. 이 같은 행렬은 2007년 갓 출시된 아이폰을 구매하기 위해 늘어선 행렬을 연상케 했다. 아이폰 원매자들이 아이폰 빈 상자를 들고 기다렸다면 모델3 원매자는 예치금 1000달러를 소지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사람들이 내년 말 출시 예정인 모델3를 예약하기 위해 줄 선 것은 혁신기술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모델3는 ‘바퀴 달린 아이폰’에 비유된다.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첨단의 승용차, 기존 자동차의 대시보드 없이 큰 화면의 소프트웨어로 구동되는 차다. 게다가 가격마저 대폭 낮췄다. 테슬라의 앞선 모델들이 1억원에 육박했던 게 모델3는 정부 지원금을 감안하면 2000만원대로 싸진 것이다. 아이폰도 혁신 그 자체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에 휴대폰과 인터넷, 카메라를 얹었다.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들에 의해 더해진 애플리케이션(앱)은 인류의 생활을 뒤바꿨다.
이런 혁신이 가능해진 것은 먼저 소수의 천재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폰 탄생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고, 테슬라에는 앨런 머스크가 있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머스크는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 테슬라, 재생 에너지기업 솔라시티를 잇달아 창업하며 업계를 선도했다.
또 한 가지. 혁신이 가능한 데는 이들의 꿈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사회·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보통 법과 규제는 시대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하지만 아이폰과 모델3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각종 기술 혁신에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미국의 법과 제도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1987년 만들어진 자동차관리법이 바뀌지 않고는 모델3나 자율주행차가 탄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소수의 천재는 인류의 삶과 문화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천재는 불모지에서 탄생될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포기한 곳에서 천재들은 가능성을 찾는다.
한국 스포츠에서 수영의 박태환과 피겨의 김연아는 이런 점에서 천재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이들을 이을 재목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은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자신의 꿈과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국민들은 이들의 엄청난 성과에 갈채를 보내고, 같은 시대 그들과 함께 있음에 국민적 자긍심마저 느꼈다.
특히 박태환은 신체적 열세를 딛고 자신보다 20㎝나 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일그러진 영웅’이 됐지만 마지막 명예회복을 위해 리우올림픽 출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천재도 어쩔 수 없이 규제 장벽에 울고 있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18개월간의 선수자격정지 기간이 지난달 만료됐지만 대한체육회는 ‘징계기간이 끝난 뒤 3년이 경과되지 않는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그의 국가대표 가능성을 일축했다. 선수자격정지에다 또다시 징벌을 가한 명백한 이중처벌이다.
물론 그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태환의 마지막 도전마저 작은 규제가 가로막는다면 한때 국민 영웅으로 칭송해 마지않던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록 ‘일그러진 영웅’이지만 마지막 명예회복의 기회는 줘야 한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돋을새김-서완석] 테슬라, 아이폰 그리고 박태환
입력 2016-04-18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