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과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과학과 여성은 여전히 거리가 먼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처음 원자력공학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이 “여자가 무슨 원자력?”이었다. 원자력공학자로,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로 사는 요즘은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느낀 점이 원자력에 대해 우리 여성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역사의 주요 장면에는 늘 여성이 있었다. 마리 퀴리는 원자력 분야에서 방사성동위원소에 대한 핵심적 연구를 해낸 사람이다. 세계 최초로 핵분열을 성공시킨 과학자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에 영향을 미친 사람 또한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였다.
원자력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과 직장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수력, 화력, 또는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만들어지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30%는 원자력발전소에서 공급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고 남는 연료가 '사용후핵연료'이다. 가정생활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음식쓰레기가 배출되고 가정생활에서 다양한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다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는 열과 방사선을 배출하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보다 훨씬 엄격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우라늄 광산에서 채굴하여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까지 인간의 생존기간을 넘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 잔반 정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택배를 받으면 플라스틱과 재생종이로 구분해서 쓰레기함에 담는 일은 이제 초등학생에게도 익숙하다. 그런데 전기 없이 살 수 없는 일상에서, 전기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편한 일만 생각하려는 전형적인 인지편향이지만, 내용을 알고 나면 우리 여성들이 더 나설 일이다.
지금까지 사용후핵연료는 각 발전소에서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었지만 각 원전의 저장 공간이 점점 차 간다. 앞으로 3년 뒤 월성원전부터 저장 시설이 가득 차는 포화상태가 시작된다. 관련 시설 건설에만 수십 년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역산하면 올해는 어떻게든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정부가 곧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정부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원전을 운영 중인 다른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발생되었고, 우리가 전기를 사용하는 한 계속해서 발생되고 있으므로 현명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다른 원전국가들의 사용후핵연료 관리방법에 대한 장단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는 오랜 검증을 통해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최적의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의 절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매력 없고 골치 아픈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국민이 관심갖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다음 세대에서 해결해주길 원할 것이다. 어느 부모가, 어떤 엄마가 자식들에게 쓰레기를 넘겨주겠는가?
최근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엄마들을 만나보고 설명을 하다보니 많은 이들이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우리 자손들에게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막연한 정서적 거부감을 가지기보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오랜기간 과학자로 참여하고 있지만, 과학적 지식 보다는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여성의 섬세함으로 사용후핵연료 해결 방안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레나(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
[기고-이레나] 부모의 마음으로
입력 2016-04-18 17:32 수정 2016-04-20 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