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했던 봄날 주말이 공포로 뒤덮였다. 14일 발생한 지진으로 9명이 사망했지만 16일 새벽 더 큰 지진이 닥쳐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17일 밤에는 붕괴된 현장에서 1명의 추가 사망자가 나왔다. 한 차례 강진을 겪은 뒤 여진(餘震)이 잠잠해지자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해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또 다시 일어난 강진으로 생사를 달리했다.
구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선 약 40만 가구에 수도 공급이 차단됐고 10만 가구가 전기와 가스 공급이 차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산사태로 지반 변형이 발생해 국도 57호선을 비롯, 곳곳의 도로가 차단됐다. 열차가 탈선해 철도 교통도 마비됐다. 토사 붕괴로 아소대교는 무너졌고 우토시청 건물 일부는 파괴됐다. 미나미아소무라와 니시하라무라를 연결하는 터널도 붕괴됐다. 구마모토 공항은 청사가 지진으로 파손돼 민항기 이착륙을 중단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여기에 미나미아소 마을 부근 활화산인 아소화산이 한 달 만에 활동을 재개해 공중 100m까지 연기를 내뿜었다. 높이 1592m의 아소산은 진원지로부터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16일 밤부터 비와 강풍까지 덮쳐 산사태 등 추가 피해가 속출했다.
탁자 아래 몸 피해 극적 탈출, 여진 잠잠해 집으로 돌아갔다가 참변
와시즈 도모유키(22)씨는 16일 오전 본진 발생 당시 무너진 아파트 천장과 바닥 사이에 끼었다가 구출됐다. 산케이신문은 그가 점점 내려앉는 천장 아래에서 휴대전화로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썼다고 보도했다.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공포심을 이겨냈고 극적으로 구출됐다.
한 중국인 유학생은 바닥이 뜯어지고 천장이 내려앉자 탁자 아래에 몸을 피해 겨우 탈출했다. 마쓰모토 마키(20)씨는 무너진 벽 사이에 몸이 끼여 움직이지 못하다가 지인이 3시간 만에 전기톱을 들고 그를 구출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이 아파트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유명을 달리한 주민도 많았다.
첫 지진 이후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해 14일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은 더 강력한 지진을 미처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닛케이신문은 강진을 겪고 집으로 돌아와 정리 작업을 하던 사람들 때문에 지진 피해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우치무라 무네하루(83)씨는 “남은 것은 여진뿐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변을 당했다.
고립된 사람들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안부를 전하거나 물품 지원을 요청해 구사일생한 이야기도 전해졌다. NHK는 트위터에 “헬기를 보내주세요. 아소 도카이 대학 운동장입니다. 야구부원만 해도 70명이나 됩니다”라는 글을 올린 한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당시 아소대 운동장으로 가는 도로는 산사태로 두절된 상태였다. 이 여성은 “식료품과 음료도 부족하다”며 “비가 와서 토사가 붕괴되기 전에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미나미아소의 도카이대 운동장에 구조를 요청하는 ‘SOS’ 문자가 크게 쓰여 있는 사진도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궜다.
자위대 2만5000명 투입해 구조…문화재 피해·자동차 공장 멈춰
구마모토현은 문화재 피해도 컸다. 문화재청 집계 결과 국가 특별사적인 구마모토성 돌담 6곳이 붕괴되는 등 문화재 14건이 손상됐고 아소시에 있는 아소 신사의 문이 무너졌다. 야마토초에 있는 명물인 돌다리 쓰준쿄에도 금이 갔다.
산업계도 타격이 컸다. 도요타자동차는 18일부터 1주일 동안 자동차 공장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도요타 측은 “구마모토 공장과 부품회사 가동이 중단돼 차문과 엔진 부품 공급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진 사망자 42명 가운데 32명이 붕괴된 주택에 매몰돼 참변을 당했다. 일본 정부는 지진을 수습하기 위한 자위대 규모를 2만5000명으로 확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구마모토현을 격심재해(특별재해) 지역으로 조기 지정하고 예비비를 신속히 투입해 복구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배병우 선임기자·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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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가 더 강력… 상식 깬 지진에 대피 후 귀가했다가 참사
입력 2016-04-18 00:44 수정 2016-04-18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