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학자… 베일속 실력자? 檢 “권력 이용 사기꾼”

입력 2016-04-18 04:03
박식한 한학자, 달변의 점쟁이, 베일 속 실력자, 혹은 사기꾼….

현 정부 ‘비선 실세’라는 말을 듣는 정윤회(61)씨의 지인인 역술인 이모(59)씨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다양하다. 정·관계 유력자들과 가깝다는 풍문은 이씨를 더욱 ‘거물급’으로 포장했다. 그런데 이씨가 최근 사기죄로 구속돼 10년 만에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그를 수사한 검찰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이라고 평했다. 정윤회씨는 1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밥 몇 번 먹었을 뿐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한웅재)는 지난 15일 이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알고 지내던 최모(여)씨에게 “대형 조선업체의 협력사로 선정되도록 도와주겠다”며 그 대가로 지난해 2월부터 수십 차례 총 9억5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전직 차관급 인사, 조선업체 부사장 등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검찰은 이씨가 거론한 인사들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다. 이들은 이씨와 안면이 있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로부터 어떤 청탁도 받은 바 없고, 이씨가 자신들의 이름을 팔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씨는 받은 돈을 빚 변제나 생활비 등으로 대부분 썼으며, 가사도우미 비용까지 최씨에게 부담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정윤회씨와 만났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존재감이 부각됐다. 그는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나와 “세월호 참사 당일 정 실장 등과 함께 평창동 저희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정 실장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식사하는 사이”라고 증언했다. 이에 정씨는 17일 “이 선생이라고 불렀지만 그분 본명도 몰랐다. 얼마 전에야 저보다 나이가 적다는 걸 알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가 ‘군자 운동’을 하는 한학자라고 소개시켜줘서 2014년 1월 처음 봤다.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해서 몇 번 갔을 뿐”이라며 “이씨는 1998년에도 나를 봤다고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씨와 유력 인사들의 친분설에 대해서는 “그건 그 사람 주장”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1980년대부터 대구와 서울 강남 등에서 철학관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학에 뛰어나고 달변인 데다 외모도 뛰어난 편이라고 주변인들은 말한다. J명상센터를 운영하던 2006년 5월에도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력이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돼 실형을 살았다. 판결문에는 이씨가 재력가 유모(여)씨로부터 “전 동거남이 법정 구속되도록 해주고, 그 배후에 있는 경찰관을 파면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이씨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양아들로서 정치인과 판검사를 많이 아는 인물’로 행세했다.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권력과의 친분을 내세워 민원을 해결해 줄 것처럼 속인 뒤 돈을 뜯어내는 수법은 최근의 사기 범행과 흡사하다. 10년 전 재판에서 ‘순수한 기부금’이라고 주장했던 이씨는 이번 수사에서도 “기부금으로 받은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기꾼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황인호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