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묻힐 뻔한 사기극 ‘안성터미널 부지 개발’ 초임검사가 밝혔다

입력 2016-04-18 04:07

“찾아뵈려 했는데 원주로 떠나셔서 전화를 드립니다…. 언젠가 피해액을 받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초임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춘천지검 원주지청으로 옮긴 이강우(32·사법연수원 40기) 검사에게 최근 익숙한 목소리의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부동산 사기꾼에게 노후자금을 모두 날린 피해자의 전화였다. 소환조사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이 검사에게 “아직 변제는 못 받았지만 진실을 밝혀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 검사가 아니었다면 파묻힐 뻔한 사건은 경기도 안성시 안성통합터미널 부지 매입과 관련해 발생한 사기였다. 서울 대형 교회에서 장로 등으로 재직하는 피해자 3명은 2014년 5월 교회 권사라며 접근한 정모(48·여·구속기소)씨에게 속아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경매로 넘어가는 처지가 됐다. 정씨는 “터미널 부동산 매입, 공사비 등에 500억원이 드는데, 사채시장에서 수천억원을 굴리는 ‘김 회장’에게서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계약금 50억원을 우선 빌려올 테니 수수료로 3억원을 먼저 달라는 요구였다.

피해자들은 수수료를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며칠 뒤 정씨는 실제 50억원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며 자금이 마련된 것처럼 행세했다. 피해자들 앞에서 금융 당국 고위 간부와 자연스레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영향력을 뽐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자본금이 투입된 법인도 꾸려졌지만 부동산 거래는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기를 알아챈 피해자들은 지난해 수사기관에 정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정씨는 무혐의였다. 50억원이 든 통장이 마련돼 있었기에 사기 의도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지난해 12월 사건을 송치받은 이 검사는 재검토를 시작했다. 부지를 소유한 대한전선 실무자를 참고인 조사를 통해 부동산 매입 구조를 파악했다. 그를 토대로 정씨의 진술에 미묘한 모순점들이 있음을 감지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과 경찰이 자금 지원의 증거로 판단했던 50억원짜리 통장이 무의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좌추적으로 복잡한 자금 흐름을 따진 결과 통장에 든 돈은 복잡한 권리가 설정돼 있어 당장 현금화할 수 없는 돈이었다. 이 검사는 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지난 2월 재판에 넘겼다. 사채시장의 ‘김 회장’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사는 “수사관들과 함께 피해자를 진심으로 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억울한 이들이 줄어들도록 앞으로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