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북부의 북한산 자락 은평구가 한국 근현대문학 대표작가들의 산실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은평구는 분단 전후 한국 대표문인들의 주 활동무대로 지역 곳곳에 문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녹번동에 위치한 정지용 초당(草堂)은 1948년부터 50년 정지용이 납북되기 이전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신사동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 숭실중·고등학교(전신 숭실학교)는 시인이 재학 중이던 38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강제 폐교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어린 시인에게 저항 의식을 깊이 심어줬다. 숭실학교는 윤동주 외에도 시인 김현승, 소설가 황순원, 김동인, 주요섭,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등이 거쳐 간 곳이다.
80·90년대에도 한국문학의 중심에 은평구가 있었다. 87년 문학지에 실린 문인 주소록을 기준으로 나온 통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거주했던 문학인 1428명 중 97명이 은평구에 살았다. 이호철의 ‘문’이나 정대구의 ‘수색동하늘’, 이유경의 ‘구파발 연시’ 등은 문학적 장소로서 은평을 환기시킨다. 80년대 결성된 ‘은평클럽’ ‘은평낚시모임’은 지역 문인들의 규합 구심점이 됐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은평구가 가진 이런 문학적 자산을 펼쳐 보인다. 오는 19일부터 6월 19일까지 ‘한국문학 속의 은평’ 전을 갖는다. 광복을 전후해 은평에 거주하며 작품을 발표했던 이들 작가 130여명의 문학작품 초간본 700여권을 한자리에 모아 공개한다. 정지용 시집(1935년 초간본), 김동인의 ‘감자’(1935년),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 최인훈의 ‘광장’(1961년) 등 반가운 작품들의 희귀본 초간본도 만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무협소설 ‘정협지’의 작가 김광주와 그의 아들인 소설가 김훈의 작품세계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손영옥 선임기자
서울 은평구, 희귀 초간본 700여권 공개한다
입력 2016-04-17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