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일단락된 지난해 7월 최전선에서 감염병 확산을 막고 감염병과 싸우는 역학조사관을 대대적으로 충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도 역학조사관은 ‘법정 정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공개 채용에서 미달 사태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같은 채용 조건을 고집하고 있는 탓이다. 역학조사관 확보는 법에 규정된 사안이어서 정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6년 경력 의사’ 뽑는 역학조사관 또 미달=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공고를 낸 역학조사관 전문임기제 ‘가’급 채용에서 다시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복지부는 ‘가’급에서 5명, ‘나’급에서 8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했었다. ‘나’급은 지원자가 모집정원을 넘겼으나 ‘가’급은 정원에 미치지 못했다. ‘가’급은 의사이면서 6년 이상 관련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1일 ‘가’급에 한해 재공고를 냈고 15일 원서 접수를 마감했다. 복지부는 어느 정도 인원이 지원했는지 현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역학조사관 전문임기제 ‘가’급 모집에서 미달은 벌써 세 번째다. 지난 연말에도 두 차례 미달로 정원 7명 가운데 2명만 채용됐다. 의료계에선 ‘지금 같은 채용 조건이면 지원자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전문임기제 ‘가’급은 계약기간 2년이다. 근무 실적이 우수하면 10년 범위 안에서 연장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지만 정년이 보장된 일반직 공무원과 신분부터 다르다.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좋은 사람을 뽑으려면 정식 직원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 정원 30명 중 17명만 채용=잇따른 미달로 역학조사관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 직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을 고치면서 중앙정부에 30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두게 했다. 특정 직무의 인원을 하위 법령이 아닌 법률에 명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역학조사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도 현재 채용된 역학조사관은 17명(가급 2명, 나급 10명, 다급 5명)뿐이다.
정원이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복지부는 법을 어기는 꼴이 된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채용조건을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시 미달돼도 같은 조건으로 재공고를 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역학조사관 부족으로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메르스는 77건,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은 215건의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원점에서 역학조사관 선발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원자에게 감염병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민간의 전문가가 당분간 역학조사관을 겸직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단독]복지부 공모 잇단 미달… 1년 다 되도록 정원 못 채워 메르스 역학조사관 확충 의지 있나
입력 2016-04-1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