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돈’ 문제다. 일단 재산이 1억1000만 달러(1263억원)로 너무 많다. 대부분 국무장관을 지낸 경험을 얘기해주고 받은 강연료로 형성된 재산이다. 클린턴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강연을 해주고 67만5000달러(7억7500만원)를 받았다. ‘사후 뇌물’ 또는 미래 대통령에 대한 ‘보험’ 성격이 짙은 돈이다. 당내 경선에서도 문제가 됐지만, 공화당과의 본선 대결에서 그녀의 돈 문제는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조세도피처에 검은돈을 숨기거나, 또는 탈세 목적으로 돈을 맡긴 일이 드러난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으로 세계의 숱한 정치인들이 곤혹스런 상황에 놓여 있다.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는 국민의 사퇴 요구에 물러나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중국 공산당의 전·현 정치국 상무위원 9명도 가족이 돈을 빼돌린 게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비밀 중 비밀’인 축재(蓄財) 문서가 만천하에 공개되리라 상상인들 했겠는가.
요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문제로 시끄러운 브라질 역시 부패 스캔들 때문에 정국이 혼란스러워졌다. 호세프와 전 대통령인 룰라 다 시우바 등 집권당 정치인들이 브라질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수뢰한 혐의다. 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들이 돈 문제로 정권을 내주는 상황까지 몰린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년 대선 출마를 노려온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역시 프랑스 화장품업체 로레알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이 속속 불거지면서 점점 더 출마가 어려워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선 국민의 존경을 받아온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은행계좌에서 8200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된 뒤 총리직 사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으로 재점화되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부패 수사도 결국 돈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해외의 돈 관련 추문에서 확인하듯 권력·명예와 돈은 함께 누려선 안 된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 대세를 거스를 땐 결국 탈이 생긴다. 금권사회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자 “왜 그 여자는 권력과 돈을 다 가지려 하느냐”고 질타했다는 사실이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가 쓴 신간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축재에 대한 사회적 관대함이 퍼져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에게 그런 관대함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특히 권력 요직에 있거나, 새로 권력자가 되려는 이들이 축재를 한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주 강하다. 최근 비상장 주식 투자로 무려 120억원대 시세차익을 얻은 진경준 검사장이나, 변호사 시절 고액 수임 논란으로 국무총리 인선과정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문제가 된 것도 권력과 돈 중 하나를 놓지 않았기에 생긴 일들이다.
돈 벌기를 마음먹었거나 돈의 유혹에 허물어졌다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자리 제안을 고사하는 게 사회에 대한 예의다. 그동안 당사자들이 미리 그렇게 하지 않아 생긴 사회적 혼란과 손실이 너무 컸다. 국제사회의 일련의 부패사건과 진 검사장 일을 계기로 ‘돈과 권력을 동시에 가져선 안 된다’는 기본원칙이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
[뉴스룸에서-손병호] 돈의 역습
입력 2016-04-17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