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슬픔의 힘

입력 2016-04-17 18:18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태어나보니 내 부모는 가난하고 내가 살아갈 세상은 불평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신화를 다룬 TV 프로그램이나 책을 접하면서 한때는 나도 그런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성공신화를 이루기는커녕 고졸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강요했지만 한편으로는 금수저, 흙수저론이 난무하는 헬조선에서 대학만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될 거라고 기대했던 우리 세대의 믿음을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는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유효하지 않은 지 오래라고들 한다.

그렇듯 우리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권력이나 학력 같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강력하고 거대한 ‘힘’들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도, 가난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도, 나처럼 주어진 환경 안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도. 문제는 그 자장 안에서 다 함께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플랭크는 말했다.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통을 받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라고. 지난주 선거 개표방송을 밤새워 지켜보면서 ‘선택’에 대해 생각했다. ‘희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살아 돌아왔다면 첫 투표권을 행사했을 우리 아이들의 슬픔도 생각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아직도 우리가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도 생각했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일기장에 썼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슬픔의 힘으로 누군가는 희망의 수력발전소를 돌리고 있었다고.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홉 명의 이름을 불러본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