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강주화] 트로이의 목마

입력 2016-04-17 18:02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남긴 서양 최고(最古)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s).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1만5693행에 걸쳐 노래한다. 그리스 원정군이 왕비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로 향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스군은 10년째 트로이성을 포위하고 전투를 벌였으나 성을 함락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리스군은 트로이 진영에 거대한 목마를 둔 채 퇴각한다. 목마를 승리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트로이인은 목마를 성으로 끌고 와 축제를 벌인다. 하지만 목마에는 그리스 병사 30여명이 숨어 있었다. 이 정예군이 성문을 열고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급습,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는 이처럼 몰래 숨어들어 상대를 위협하는 것을 가리킨다. 최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대 텃밭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후진적 정당 체제를 허물고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들에게 트로이의 목마 이미지가 겹쳐진다. 적진을 파고들었고 지역주의를 이완시켰다는 점에서다. 정당정치에 대한 희망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은 1985년 이후 31년 만에 대구에 야당 깃발을 꽂았다. 새누리당 정운천은 20년 만에 전북 전주에서 당선됐다. 같은 당 이정현은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부산·경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춘 등 8명이 여당 후보를 따돌렸다. 신당인 국민의당 정당득표율은 25%를 넘겼다. 지역주의에 안주해온 양대 정당에 대한 경고다.

한국 민주주의를 평생 연구해온 정치학자 최장집은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 문제를 (영·호남) 지역 간 갈등으로 환치시킨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리아스에서 목마를 받아들인 트로이인들은 나라를 잃고 유랑의 길에 오르지만, 적진에 돌진한 후보에게 표를 준 시민들은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보게 될 것이다.

강주화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