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프랑스 파리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파리의 시립극장인 테아트르 드라빌에서 선보인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프랑스 제목은 ‘마담 옹’)에 대한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외설적인 이야기로 알려진 고전 ‘변강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이 공연되는 내내 객석에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한국 연극계의 간판인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을, 창작국악그룹 푸리의 소리꾼 한승석이 작창을 맡은 이 작품은 2014년 국립극장 초연 당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원작의 해학성은 유지하면서도 색정의 화신이었던 변강쇠와 옹녀를 생명력 넘치는 민초의 상징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변강쇠 대신 옹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승동티(장승을 잘못 건드린 벌로 받은 재앙)로 죽은 남편의 복수를 하는 등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그려내 지지를 받았다.
이날 파리 공연이 끝나자 프랑스 관객들은 열정적인 박수로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일부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다. 덕분에 국립창극단 단원들은 여러 차례 무대로 불려나와 인사를 해야 했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가 고선웅은 “마치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첫 공연을 앞두고 실패에 대한 불안과 부담을 넘어 공포감마저 들었는데,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고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면서 “한국어로 된 전통적 음악극인 창극이 세계에서도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객석 1000석의 테아트르 드라빌은 파리시가 지원하는 5개 공공극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초청한 다양한 장르의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파리 현대 공연예술의 최전선이다. 프랑스 연극계의 총아인 연출가 엠마뉴엘 드마르씨-모타가 2008년부터 극장장을 맡고 있다. 드라므씨-모타 극장장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외에 안은미의 ‘땐스’ 3부작 등 10편 가까운 한국 작품들을 이번 시즌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소개하고 있다.
드마르씨-모타 극장장은 “프랑스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고층 빌딩, IT기술로 대표되는 경제발전, K팝과 영화 등 대중문화에 국한돼 있었다”면서 “이번에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통해 프랑스 관객들이 한국의 다양한 이미지를 실감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음악과 이야기의 힘에 놀랐다”며 “동양의 전통적인 공연 가운데 섹슈얼리티와 코미디를 한 무대에서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은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유럽에서 공연되는 한국 창극으로는 세 번째지만, 현지 극장의 초청으로 정식 시즌 프로그램에 포함된 것으로는 처음이다. 앞서 ‘우루왕’ ‘수궁가’ 등 2편은 모두 국립극장이 해외 공연장을 직접 대관해 공연했지만, 이번에는 1억원 정도의 개런티(항공료 제외)를 받았다. 개막 전에 4회 공연 중 첫 회는 매진됐고, 나머지 3회도 대부분 팔린 상태였다.
파리 공연에 동행한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세계적인 명성의 테아트르 드라빌 무대에 시즌 프로그램으로 오른 것은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이 작품에 대한 파리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국립극장과 국립창극단이 추진해온 전통의 현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일본의 가부키와 노, 중국의 경극은 이미 유럽에 많이 알려진데 비해 한국의 창극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면서 “이번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프랑스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 창극을 본격적으로 부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파리=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파리 관객 매혹시킨 옹녀, 창극 세계화 길을 열다
입력 2016-04-17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