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가 오늘의 저를 키웠습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발레리노 이재우씨

입력 2016-04-17 19:21
발레리노 이재우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점프를 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이재우의 두 발. 고된 훈련의 흔적이 배어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발레리노 이재우(25)는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다. 195㎝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임에도 뛰어난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이재우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발은 성한 곳이 없었다. 아름다운 동작들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20년 간 피나는 훈련을 해온 그의 열정을 짐작케 한다.

이재우는 2014년 4월 ‘백조의 호수’ 공연 직후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석무용수로 승급됐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무대에서 전격 발표한 것이다. 국립발레단 창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7월에는 제8회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에서 남자부문 금상을 받았다.

화려하게 보이는 순간들은 어둠의 시간을 견뎌낸 결과였다. 지난해 2월 허리디스크가 파열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탈수 증세와 함께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앞이 깜깜해지면서 눈이 안 보였다. 이재우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며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발레를 못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당시 연습 중이던 로맨틱 발레의 대표작 ‘지젤(Giselle)’의 무대를 결국 포기했다.

이재우는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화를 내기도 했다”며 “근데 나중엔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다”고 고백했다. 기도와 함께 이를 악물고 재활에 몰두했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돼 두 달 만에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때 한 작품이 ‘말괄량이 길들이기’였다. “공연을 마치고 힘든 시간들이 떠올라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몰라요. ‘하나님 감사합니다’만 외쳤습니다. 노력도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재우는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했다. 발의 뼈가 갈라지고 무릎이 다치는 등 세 차례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20년 동안 발레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욕심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하나님께만 맡기면 탈 없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데, 욕심을 내고 ‘내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깨진다”고 말했다.

이재우가 발레리노로 성장한 데는 어머니 백은혜(58)씨의 기도를 빼놓을 수 없다. “일곱 살 때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일을 하며 저를 키우셨어요. 예·체능을 한다고 하면 집안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 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에 제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하신 뒤 일하러 나가셨어요.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다시 기도해주셨어요. 어머니 기도는 언제나 ‘우리 재우 하나님이 키워주세요’ 였습니다.”

이재우는 수석무용수가 되고 콩쿠르에서 1등 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아시고 한 판 뒤집기를 하시는 유일한 분”이라며 “내 능력은 1%도 없다.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면 사랑으로 채워주신다”고 말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