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뻔한 거짓말 중 하나가 노인이 “일찍 죽어야겠다”고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했듯이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존귀한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죽는 것도 내 몸에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존귀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로 살고 은혜로 죽는 것입니다.
반대로 은혜가 없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보다 더 은혜가 없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은혜 없이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불로장생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진시황도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은 모두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죽음을 갈망할 필요가 없듯이 반대로 우리는 살기를 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내일 하루를 허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또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에는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믿고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을 보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고 경험하고 소유한 우리는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죽어도 좋아’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어도 좋을 만큼 내 삶의 은혜가 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전 12:9)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인생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인생’입니다. 많은 것을 누려도 죽을 때 이 세상에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무엇인가 부족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은 것을 누려도 죽을 때에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없는 사람은 넉넉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주 안에 있으며, 우리가 죽는 것도 주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으로 복 받은 인생이 되길 축원합니다.
◇약력=△서울장신대 예배찬양사역대학원 졸업 △선교합창단 빅콰이어 단장
[오늘의 설교] 살든지 죽든지
입력 2016-04-17 17:37 수정 2016-05-04 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