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1913∼1974) 작품이 국내 미술품 최고가를 두 번 갈아 치웠다. 지난해 10월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1971년작 점화(點畵) ‘19-Ⅶ-71 #209’가 47억2100만원에 낙찰돼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를 제친 데 이어 지난 4일 서울옥션의 홍콩경매에서 1970년작 ‘무제’가 48억6750만원에 팔려 자신의 그림값을 경신했다. 왜 김환기인가, 언제까지 얼마나 오를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중섭 박수근에 이어 김환기 시대가 왔다=이번에 김환기 작품을 낙찰 받은 이는 홍콩 컬렉터라고 서울옥션은 밝혔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컬렉터들이 김환기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요즘은 대부분 외국인이 사간다. 김환기 작품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현대미술은 이중섭과 박수근 두 국민화가를 중심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두 작가는 국내에 국한된 느낌이라면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김환기는 세계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단색화의 원조라는 점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가히 ‘김환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술계는 김환기 작품이 곧 100억대를 칠 것으로 전망한다. 수백억원 호가하는 중국과 일본 작가처럼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당위론도 나온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김환기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저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100억대 진입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모던하면서도 보편적인 조형미가 매력이다=김환기 작품이 상한가를 치는 원인은 작품이 주는 느낌이 좋고 단색화 바람의 영향 덕분도 있고 해외 수요의 저변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시기별로는 1960∼70년대 점화 시리즈가 더 인기다. 사람 사는 다양한 모습을 점으로 표현함으로써 모던하고 보편적인 조형미를 개척했다는 평가다.
최근 몇 년 간 미술시장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온 이우환 작품이 진위 논란이 제기되는 것과 달리 김환기 작품은 위작 시비에서 자유롭다. 웬만한 작품은 도록이나 자료 등을 통해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 등 해외 경매에서는 외국인 소장자가 출품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미술한류의 역주행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김환기 작품의 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단색화 열풍과 마찬가지로 김환기 작품이 아니고선 얘기가 안 된다. 한 번 나왔던 작품이 얼마 지나지 않고 다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거품이 빠지면 무관심해지는 상업적인 접근으로는 김환기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로 키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환기, 사람은 가고 그림은 남았다=오늘날의 김환기가 있기까지 부인 김향안(1916∼2004)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상 시인의 부인이었던 김향안은 이상 타계 후 김환기와 재혼해 남편의 예술을 꽃피우는 데 헌신했다. 1974년 김환기가 죽자 김향안은 남편의 예술세계를 정리하고자 89년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92년 환기미술관을 지어 ‘김환기 브랜드’를 높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은 김향안 탄생 100년을 맞아 특별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를 마련했다. 김향안이 미술관 개관 때 적은 내용에서 전시제목을 따왔다. “작가의 투명하고도 격조 높은 조형의 언어는 다시 우리들에게 되돌아와 성좌의 영롱함으로 빛날 것이다. 사람은 가고 여기 그의 예술은 남다.”
6·25전쟁 부산 피란 시절 그린 ‘판자집’, 서울 성북동 시절 ‘수화산방’ 자료, 파리와 뉴욕 시대 대표작, 1950∼70년대 유화·드로잉·과슈 등 400여점을 선보이는 최대 규모의 전시다. 70년대 점화의 추상적 조형언어를 완성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2점이 눈길을 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02-391-7701).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47억… 48억… 곧 100억대? 김환기 시대 왔다
입력 2016-04-17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