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봄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도 진달래도 아닌 벚꽃이 되었다. 2012년 발표된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은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차트에 재등장한다. 그야말로 ‘국민 봄 노래’다. 올해엔 많은 가수들이 많은 봄 노래를 발표하며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4월의 화사함과 달달한 봄 노래를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나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아무 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봄빛은 푸른데.’
아주 독특한 색깔로 마니아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부른 ‘잔인한 사월’의 한 소절이다. 이 노래는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봄을 맞았지만 정작 자신을 받아줄 보금자리를 상실하고 길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 청춘들의 고뇌를 담담하게 읊조리고 있다.
1920년대 미국의 시인 T S 엘리엇이 자신의 시 ‘황무지’의 서두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한 이후, 이 말은 자주 인용되곤 했다. 하지만 난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대지에 새로운 새싹과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은 너무나 아름다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이 말의 의미가 봄의 생기를 잠식하며 서늘하게 다가온다. “약속된 시간이 끝난 뒤엔” 열심히 했으니까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갈 곳이 없는 청춘들에게 이 노래는 ‘벚꽃엔딩’의 낭만보다 더 가슴을 후벼 파는 공감이 서려있다.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4월은 분명 잔인한 계절이다. 청춘 세대의 힘겨운 길 찾기를 응원한다. 또 다른 봄 노래를 들어보자.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사월 목마른 사월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이 노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 하덕규와 함춘호로 이루어진 듀오 시인과 촌장의 ‘진달래’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재해석했다. 시인이 마주한 봄꽃 노래는 참 슬프다. 하덕규 특유의 절제된 읊조림과, 그 여백을 타고 흐르는 함춘호의 담담한 기타와 한송연의 다채로운 건반 연주가 감성을 극대화한다. 화사한 봄에 역설적으로 서늘하고 쓸쓸한 늦가을이 느껴진다.
2년 전 4월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많은 아이들과 이웃들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그 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떠들썩했던 20대 총선이 끝나고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세월호 이야기는 주요 정당의 어젠다에서 들어볼 수 없었다. 오히려 총선의 국면 속에 세월호 2주기는 너무나 조용하게 지나버리는 듯 하다.
세월호 유족들의 마음이 씁쓸하지 않을까? 정치적 입장을 떠나 우리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이 서정적 엘레지의 후렴처럼 채 피지 못하고 사그라진 4월의 꽃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꽃이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현대기독교음악(CCM) 아티스트 김명식이 부른 ‘사람을 살리는 노래’의 가사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봄 노래는 ‘상한 영혼 일으켜 다시 살게 하는 노래’여야 한다.
윤영훈<빅퍼즐문화연구소장>
[윤영훈의 컬처 토크] 맘 아픈 이웃들을 위한 봄 노래
입력 2016-04-15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