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흙수저와 금수저

입력 2016-04-15 18:49 수정 2016-04-15 20:28

모 제철소 공사현장에서 단말 치수를 측정하던 중 감전으로 2도 화상을 입어 수개월을 입원한 의뢰인 을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거부되었다. 그는 사업자등록을 한 자영업자이므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장애로 수개월 입원한 그는 지금 실직상태에 있기에 수천만 원의 치료비가 더욱 절박하다.

법원은 사용자로부터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으며 임금을 대가로 노동을 제공하는 자를 근로자로 본다. 비록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사업주가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강요하였다면 실질적으로 근로자로 판단해 주고 있다. 을은 사업주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낮은 급여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했고 독립적으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했기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받기에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포도원 주인은 3시와 6시, 9시, 11시 네 차례 길거리로 나가 품꾼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의 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초대한다. 일을 마친 후 주인은 단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11시에 초대받은 일꾼에게도 다른 품꾼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마 20:12). 가장 짧은 시간 일한 일꾼도 다른 일꾼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은 포도원 비유는 수임 사건을 해결하는 힌트가 되었다.

단 한 시간 일한 포도원 품꾼은 나머지 품꾼과 동등하게 대우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간당 임금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처럼 내 의뢰인도 사업주로부터 일당을 조금 더 받았다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근로자로 인정받게 할 수는 없을까.

이같은 착안을 사건에 적용시켜보았다. 첫째, 1인 자영업자인 을은 사업주로부터 수시로 업무지시를 받는다. 둘째, 사업자의 근로자였을 때 하루 12시간의 근로제공에도 월 196만 원을 지급받았고, 월 2회의 주말 근로에도 수당을 못 받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탈피하기 위해 사업자등록을 했으므로 해당 사업주는 간접적으로 의뢰인이 자영업자가 되도록 유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셋째, 사회보험의 목적은 사회적 위험에 처한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을을 보호해야 한다.

서울행정법원 3월. 예정된 재판시간을 눈앞에 두고 근로복지공단 소송수행자는 조정의사를 타진했다. 요양급여를 지급해주는 대신 소송비용부담은 각자 부담하는 조건으로. 이를 수용하여 의뢰인은 치료비를 전액 보상받게 됐다.

소송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흙수저와 금수저 논란을 보게 된다. 수저 논란은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신분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계층 간의 갈등을 대변해준다. 부유한 환경 속에 태어난 금수저가 현실에 안주할 때 녹슨 금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금수저는 쟁기가 될 수 없어 흙을 기경할 수 없다(호 10:2). 하지만 흙냄새를 맡고 흙을 만져본 흙수저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흙 수저 혼자 힘만으로는 흙에 거름을 주어 비옥한 옥토를 만들고 여기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 이처럼 흙수저와 금수저는 함께 살아야 하는 연대적 관계다.

개인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의뢰인에게 요양급여를 제공해준 사례는 연대의 중요성과 그 가능성을 알려준 작은 신호가 되었다. 포도원주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때 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결국 그 마음을 전할 사명은 교회에 주어져 있다.

박상흠 변호사<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