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생은 ‘부정’과 ‘조작’으로 얼룩져 있었다.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공무원시험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생 송모(26)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부정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로 약시(弱視) 진단서를 받아 남들보다 긴 시험시간을 보장받았고, 이를 이용해 ‘커닝’을 했다. 그는 대학 강의에 빠질 때마다 허위로 만든 허리협착증 진단서를 내밀어 수업일수를 채웠다.
경찰은 14일 송씨에게 ‘건조물침입’ ‘절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문서위조 및 행사죄’ 등 여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 조사로 밝혀진 송씨의 조작, 부정행위는 크게 보면 6건이다. 지난달 5일 치러진 국가직 지역인재 7급 공무원시험 성적 조작, 앞서 치러진 1차 시험지 절취, 토익과 한국사시험 부정행위, 수능시험 부정행위, 대학 출석 조작이다. 그는 왜 부정과 조작을 습관처럼 계속했을까.
허위 ‘약시 진단서’로 수능에서 부정행위
2010년 제주 모 대학에 입학한 송씨는 그해 겨울과 다음해 겨울 수능을 치르면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의사를 속여 허위 약시 진단서를 미리 받아 제출했다. 약시 진단서를 내면 ‘저시력자 특별대상자’에 해당해 과목당 1.5배 연장된 시험시간을 받을 수 있다.
2010년 치러진 수능에선 영역별로 시험이 끝나면 답안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일반 수험생보다 시험시간이 길었던 그는 고사장 화장실에 가서 숨겨둔 휴대전화로 정답을 확인했다. 이 시험에서 그는 먼저 정답을 알 수 없었던 1교시 언어영역에서 5등급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1등급을 맞았다. 하지만 지원 대학에 떨어졌다. 이듬해 수능부터는 전체 시험이 끝나야 정답이 공개되도록 바뀌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송씨는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그랬다”고 진술했다.
허위 약시 진단서는 토익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쓰였다. 2010년 발급받은 허위진단서를 조작해 제출했고 일반인보다 1.2배 많은 시험시간을 받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위조한 허리협착증 진단서를 제출해 6차례의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비정상으로 진화한 ‘커닝병자’
송씨는 ‘공무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범행은 반복됐고 수법은 진화했다. 죄의식은 점차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집안에서 자란 송씨가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이 돼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송씨가 어려서부터 당연히 공무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염건령 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는 “주변의 기대치가 높을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칭찬받는 행위를 통해 자기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규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도 “부모가 성공만을 중요한 가치로 교육하고 성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범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성취’에 매몰돼 한두 번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보면 강도는 더 세지기 마련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인이 된 이후 갑자기 비도덕적 행위가 발현되기는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심리적 학습효과와 강화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됐을 때 주어지는 불이익보다 성공했을 때 얻는 성취감과 이득이 상대적으로 컸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심리적 ‘강화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터득한 ‘쉬운 해결법’은 송씨 나름의 ‘문제해결 방식’이 돼버렸다. 정신과 전문의인 남민 은평병원장은 “부정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됐다면 자기 나름의 문제해결 방식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배상훈 서울사이버대학 경찰학과 교수는 “부정행위가 반복되면서 기술적으로 진화해 청사 침입까지 가능했다. 계속 속이다 보니 속이는 일 자체가 직업이 된 경우”라고 지적했다.
범행이 반복될수록 죄의식은 흐려진 것으로 보인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센터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습관적으로 부정을 일삼으면서 죄의식을 못 느끼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범행과 관련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추궁하면 (송씨가) 진술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수능·대학서도 부정… 죄의식 마비된 ‘커닝 괴물’
입력 2016-04-15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