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주자 후보군이 크게 넓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등 ‘전통의 강호’에다 김부겸 의원 등 ‘다크호스’, 또 왕년의 대선주자들도 다시 등장했다. 야권판 ‘9룡’(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 나선 9명의 대선주자)의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 치명타를 입었지만 여전히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다. 당내에는 기존의 친문(친문재인) 그룹이 대거 당선된 데다, 김경수(경남 김해을) 최인호(부산 사하갑) 당선인 등 친문 인사들도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또 문 전 대표가 영입한 표창원(경기 용인정)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김병관(경기 성남 분당갑) 당선인 등도 든든한 우군이다.
안 대표도 이번 총선에서 대선주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국민의당이 지지율이 추락하고 통합 논란이 벌어졌을 때 통합파인 김한길 의원 등을 제압하면서 리더십을 과시했다. 또 “단일화하지 않고도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했고, 새누리당 지지층을 대거 잠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확장성’을 보여줬다.
야당 불모지인 대구에서 깃발을 꽂은 김부겸 당선인은 ‘잠재 능력’이 가장 크다는 평가다. 호남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더민주 간판을 내걸고 새누리당 아성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김 당선인은 여기에다 62.3%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새누리당의 대권 잠룡인 김문수 후보를 꺾은 것도 야권 지지층에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더민주 정세균 의원도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오세훈 후보를 격침시키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정 의원은 전북에서 4선을 한 뒤,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호남과 수도권에서 득표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는 평가다.
국민의당 정동영 당선인도 호남의 맹주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력 정치인인 데다 통일부 장관, 여당 의장 등 오랜 정치 경험으로 쌓은 정치력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같은 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일찌감치 ‘호남 주도의 정권교체’를 강조해 왔고, 광주에서 8석을 석권하는 데 기여한 만큼 광주·전남의 유력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도 건재하다. 당 안팎에서는 더민주가 수도권에서 압승한 것에는 박 시장의 대중적 인지도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밖에 박영선 의원과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당선인 등도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4일 “야권이 압승하면서 자칫 문 전 대표와 안 대표의 소모적 싸움이 될 뻔했던 대선주자 경쟁이 활기를 띨 가능성이 커졌다”며 “특히 더민주 내에서 공정한 대선 경쟁이 진행되고, ‘문재인 독주론’에 제동을 걸 만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훨씬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이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처럼 야권 주자 간 적대적인 경쟁으로 그친다면 야권에 ‘승자의 저주’가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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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15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