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는 꼭 치마여야 할까. 드레스 자락이 치렁치렁 바닥을 길게 끌어야 할까. 일생일대 이날 하루만은 꼭 한 번 공주가 되고 싶어 하는 뭇 여성의 로망이 이 순백의 서양식 옷에 담겨 있다. 그러나 웨딩드레스야말로 여성은 순종적이고 연약한 존재라는 성 역할에 대한 통념이 집약된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성을 극대화한 웨딩드레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킨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끊임없이 관습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실험과 혁신으로 패션계 악동이란 별칭을 달게 된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64·사진)이다.
그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보자. 아프리카 족장의 방패를 몸통으로 처리한 웨딩드레스, 힘의 상징 같은 굵은 벨트를 허리에 두른 승마 바지에 점퍼 스타일의 웨딩드레스, 추장의 깃털 모자에나 있을 법한 깃털이 어깨에 숭숭 매달린 웨딩드레스, 헝가리 경기병 복장을 연상시키는 웨딩드레스…. 웨딩드레스가 이렇게 ‘강력한 파워’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상상 초월의 파격 웨딩드레스는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장 폴 고티에전에서 만날 수 있다. 고티에를 잘 모른다면 팝 가수 마돈나가 1990년 월드 투어 때 입었던 ‘원뿔형 브라(Con Bra)’를 기억하면 된다. 그 무대 의상을 디자인한 이가 고티에이다. 뤼크 베송 감독의 SF 영화 ‘제5원소’(2013)에서 미니멀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옷을 선보였다. 장르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약 덕분에 그의 작품 세계를 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은 유약하다는 여성 패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강인한 여성을 형상화한 그의 패션은 남성용 스커트, 남녀 구분이 없는 ‘앤드로지너스 룩’ 등을 통해 패션 속에 정형화된 성 개념의 틀을 깨온 패션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여성을 속박하는 코르셋을 거꾸로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겉옷으로 재탄생시키는 전복적 사유가 신선하다. ‘콘 브라’ 한복 버전도 만날 수 있다.
그는 비닐, 필름, 주방기구 같은 패션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기물을 끌어들였다. 필름으로 만든 블라우스, 쿠션이 매달린 블라우스 등이 눈길을 끈다.
전시는 살롱, 오디세이, 스킨딥, 펑크캉캉, 도시정글, 메트로폴리스, 결혼 등 7가지 섹션으로 나눠 디자인 철학과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살롱 코너에서는 할머니들이 살롱을 기웃거리며 자연스럽게 패션에 눈뜨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다.
파리에서 태어난 고티에가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낭중지추의 재능은 패션계의 거물 피에르 가르뎅(94)의 눈에 띄었다. 이렇게 패션계에 입문한 그는 기성복 디자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장 파투 하우스 등을 거치며 실력을 쌓고 1976년 첫 오트쿠튀르 컬렉션(고급 맞춤복 패션쇼)을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관행을 벗어나는 전위적인 스타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티에전이 아시아에서 열린 건 처음이다. 현대카드가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마련했다. 6월 30일까지. 성인 1만5000원.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원뿔 브라’의 역발상 웨딩드레스를 바꾸다
입력 2016-04-14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