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김은혜] 기억의 봄, 4월

입력 2016-04-14 18:29

만개한 벚꽃들 사이로 자꾸만 떠오르는 슬픔이 있습니다. 이제 막 피려하는 꽃봉오리를 보면 가슴은 더 먹먹해집니다. 행복한 4월을 누리기에 충분히 눈부신 이 봄날,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자녀와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고통에 연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지만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연민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이럴 때마다 이 땅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으면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미수습자 학생의 어머니 한 분이 밤마다 하나님께 “저를 우리 딸에게로 데려다주세요. 제발 이렇게 눈 감고 캄캄한 바다에 홀로 있을 내 아이에게로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며 흐느끼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디찬 바다에서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긴 시간 동안 두 눈 뜨고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같은 깊이로 느낄 수 있을까요. 너무 깊은 슬픔은 사람의 말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팽목항에서 성직자들은 하늘의 위로를 간구하며 고통당한 사람들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가슴으로 안아주고,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는 일 외에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합니다. 억울한 죽음이기에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겨진 자들에게는 고통에 대한 공감보다 희생에 대한 기억이 더 중요한 책임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빨리 눈을 감아버렸고, 연민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듯합니다. 침착한 일상의 삶은 이렇게 망각과 무관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무관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고난을 깨닫는 능력과 이웃의 고난을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케 함으로써 고통을 망각하는 대열에 서게 했습니다.

기억을 함께 한다는 것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카타콤의 짙은 암흑에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기억하는 일, 로마제국의 칼날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고백하는 일,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 되신 주님을 기억하는 일이 고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기억의 공유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며 이웃을 위한 선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세상이 아파하는데 교회가 건강할 수 없으며 세상이 암울한데 교회가 행복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 역시 자신들의 시대에 가득 찬 고통과 절망의 소리에 신실하게 응답하며 새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야말로 이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경험을 통해 이웃의 고통을 함께 기억함으로 지금 이곳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 생명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공동체는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 최소한의 양심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늘의 위로를 신원하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 기억을 공유해야 합니다.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한 채 바람직한 미래를 소망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해야만 진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만 동일한 고통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억의 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그의 고난을 기억하고 현재 고난 받고 있는 자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4월의 기억의 봄날에도,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김은혜 교수 (장신대·기독교와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