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유장춘] 약자 중심의 사회를 향하여

입력 2016-04-14 17:40

복음은 단지 종교적 영역에서만 진리가 아니다. 복음은 세속적 영역에서도 타당성을 갖고 있다. 십자가의 진리는 종교적인 의미에서만 진리가 아니라 정치활동과 기업 운영 등과 같은 일반사회의 영역에서도 진리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교리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진리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 정신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정치가 기업가 기술자 교육자 법조인 농어민 종교인 등 어떤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십자가를 지는 정신으로 일하면 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보편성이며 복음의 세속적 타당성이다.

예수가 전한 복음 중에 ‘잃은 양의 비유’가 인간사회에 제시하는 사회학적 진리는 약자 중심의 원리다. 목자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을 산 속에 방치했다. 이는 약자를 위한 강자의 희생, 소수를 위한 다수의 양보, 죄인을 위한 의인의 고통, 그리고 낮은 자를 위한 높은 자의 섬김을 의미한다. 잃은 양 한 마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귀찮은 양이 아니라 99마리의 양을 온전케 하는 한 마리의 양이었다. 그러므로 그 양은 가장 큰 배려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양이다. 비록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을 전제로 할 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 원리를 현실 사회에 적용한다면 어른보다는 아동이 더 보호돼야 하고, 젊은이보다는 노인이 더 존중돼야 하며, 부자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더 배려해야 하고, 건강한 사람보다는 환자나 장애인의 편의가 더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를 교통질서에 적용한다면 트럭이나 탱크보다는 승용차가 더 보호돼야 하고, 승용차보다는 이륜차를 더 배려해야 하며, 이륜차보다는 보행자의 권리가 더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누가 이런 주장을 비합리적이라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매도할 수 있으랴.

동물적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로서 힘과 폭력이 중심 되는 사회다. 반면 인간적 세상은 사회계약적 세계로서 정의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그 세상은 약자 중심의 세계, 즉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다. 미개한 사회일수록 폭력을 가진 자가 재화와 기회와 온갖 좋은 것을 독점하고 자기중심으로 사회를 지배한다. 선진사회일수록 약자가 존중되고 더 많은 비용을 사용하며 직장이나 문화적 향유에서 우선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선거가 끝났다. 결과에 대해 기뻐하는 당도 있고 애석해하는 당도 있다. 그러나 결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옳은 일을 위해서 선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는지가 중요하다. 정말 그랬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할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위해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선거가 끝났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정치가 시작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긴 사람은 국회 안에서, 진 사람은 국회 밖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든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사회는 약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목표하는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다. 바로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경험되고 복음이 현실화된다. 우리 사회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 25:40)”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 주변의 약한 자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높이 받들어 섬길 정도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해도 “하나님이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고전 12:24)”라는 말씀이 사회적으로 실현되길 기독교인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

유장춘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