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제주도 여행의 두 번째 날이었다. 모슬포항에서 마라도로 들어갈 계획을 취소하고, 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늘밭 사이를 걸었고, 유채꽃들이 환하게 흔들리고 있는 들판을 가로질렀다. 일제 강점기에 관제탑이었다는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 배가 어떻게 되었는지 잠시 궁금해했던 기억은 난다. 차 안에서 들었던 뉴스에서 학생들 모두 구조되었다고 들었다며, 큰 배가 더 안전하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의논했다. 설마 해경도 있고 대통령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는 나라에서, 부모와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을 아이들을, 가족을 돌보고 세금을 내며 살아가던 시민들을, 속수무책 방치할 줄 몰랐다.
배가 기울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4월 16일 오전 8시52분부터 완전히 침몰한 4월 18일 오전 11시50분까지,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저녁에 맛있는 음식 먹을 궁리를 하던 나는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가 되었다. 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면서 해경이 곧 온답니다, 나 살고 싶습니다, 진짜로, 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희생양이 되었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의 존엄은 허용되지 않았다.
언젠가 버스를 탔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취객이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세월호는 그냥 교통사고야!” 그는 고함을 질렀다. 그냥 교통사고라면 술주정을 하면서까지 강조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려나 나 또한 그 모든 일들을 잊은 채, 에어포켓 같은 일상의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만.
그 배가 사라지는 장면을 실시간 지켜보았으므로, 이제는 그 배가 나타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차례다. 돌이킬 수 있는 게 하나라도 남았다면 오직 그것뿐이다. 그 배는 떠내려가도 안 되고, 조각이 나도 안 된다.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그것을 똑바로 지켜보면서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그 배가 모습을 드러내면
입력 2016-04-14 17:39 수정 2016-04-14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