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與 철옹성 영남… ‘배신의 정치’ 심판이 되레 부메랑으로 돌아와

입력 2016-04-14 02:10
유승민 당선인(앞줄 왼쪽 두 번째)이 13일 오후 대구 동구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출구조사를 지켜보고 있다. 유 당선인은 밝은 표정의 지지자들과 달리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다. 대구=이병주 기자

새누리당 공천 파동은 텃밭 영남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31년 만에 첫 야당의 깃발이 꽂혔다. 오만한 여당을 심판하자는 불길이 부산·경남(PK)에까지 번지면서 무소속과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약진했다. 울산에서는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가 깜짝 돌풍을 이뤄냈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67곳 지역구 중 64곳을 싹쓸이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65곳 중 15석 넘게 잃었다.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계 모두의 완패다.

◇충격의 대구=새누리당은 대구에서 무소속과 야당 후보들의 선전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선 12석 모두를 차지했지만 이번엔 8석만 겨우 건졌다.

대구 수성갑에서 더민주 김부겸 후보가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압도하며 당선됐다. 19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김부겸 후보는 3수 만에 뜻을 이루며 단숨에 대권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1985년 12대 총선 이후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대구에선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더 큰 이변은 더민주를 탈당한 무소속 홍의락 후보의 북을 당선이다. 홍 후보는 새누리당이 장애인우선추천 명분으로 내세운 전략공천자 양명모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눌렀다. 대구에서는 홍 후보 당선이 친박계의 공천 학살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천 파동으로 무소속 출마한 유승민 후보 역시 대구 동을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역시 무소속 주호영 후보도 대구 수성을에서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대구에선 다만 조원진·추경호·정종섭 후보 등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당선돼 체면치레는 했다. 유 후보가 전폭 지원에 나섰던 류성걸·권은희 후보는 여당 아성을 넘지 못했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선거운동 초반 ‘진박 연대’를 내세우며 대구 시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게 패배의 원인으로 꼽힌다. 공천 파동 이후에도 대통령 존영(사진액자) 반납, 유 후보 비판 공동 기자회견 등 논란을 일으켰던 게 화근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선거 막판 새누리당 후보 11명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읍소 전략에 나섰지만 민심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친박계가 박 대통령을 오히려 힘들 게 만들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이유다. 대구는 투표율도 전국 최저를 기록하며 정치 혐오를 드러냈다.

◇영남권 야풍=대구에서 시작된 ‘심판’의 바람은 영남 전체로 퍼져나갔다. 당장 김무성 대표의 고향 부산에서 대파란이 일어났다. 김 대표 측근인 새누리당 박민식 후보와 서용교 후보가 더민주 전재수·박재호 후보에게 개표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부산진갑 나성린 후보와 사하갑 김척수 후보 역시 개표 막판(오후 11시30분 현재)까지 각각 더민주 김영춘·최인호 후보에 밀렸다.

애초 안정적 당선권으로 여겼던 김희정 후보도 더민주 김해영 후보에게 졌다. 사상에서는 무소속 장제원 후보와 더민주 배재정 후보가 초반부터 경합을 벌였다. ‘박근혜 키즈’ 손수조 후보는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지역구 18곳 중 안정적 우위를 보인 곳은 10곳에 그쳤다.

경남 김해갑에서는 더민주 민홍철 후보가 새누리당 홍태용 후보를, 김해을에서는 더민주 김경수 후보가 새누리당 이만기 후보를 각각 누르고 당선됐다. 창원 성산에선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를 이겼다. 밀양·의령·함안·창녕에서는 공천 학살에 불복하며 탈당한 무소속 조해진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새누리당 엄용수 후보를 앞섰지만 개표에서는 근소한 차로 뒤졌다.

19대 총선에서 여당에 몰표를 줬던 울산도 크게 흔들렸다. 울산 동구에서는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새누리당 안효대 후보를, 북구에서는 무소속 윤종오 후보가 새누리당 윤두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둘은 모두 야권 단일후보다. 울주에서도 무소속 강길부 후보가 새누리당 김두겸 후보를 제쳤다. 남갑과 남을에서는 새누리당 이채익·박맹우 후보가 더민주 심규명 후보, 무소속 송철호 후보와 박빙 승부를 펼쳤다.

새누리당은 영남권 중 유일하게 경북에서만 전 지역구를 석권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현역 첫 탈당자였던 무소속 김태환 후보도 새누리당 장석춘 후보에게 졌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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