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의 꿈… 새누리 ‘심장’서 대권 깃발 꽂다

입력 2016-04-14 01:35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13일 대구 수성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대구=이병주
여당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인은 13일 당선 소감으로 “대구 시민이 새 역사를 쓰셨다. 공존과 상생의 정치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은 31년 만에 이뤄진 ‘대구 야당 국회의원 당선’ 대기록이다. 김 당선인은 일약 대권주자 대열에도 합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선은 31년 만의 대기록=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야권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대구 수성갑에서 김 당선인의 당선은 중선거구제였던 12대(1985년) 이후 대구의 첫 정통 야당 의원으로 헌정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대구에서는 14대(1992년)와 15대(1996년) 총선에서 국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가 당선된 적은 있지만 이들은 ‘정통 야당’은 아니었다.

김 당선인은 당선 소감문에서 “여야 협력을 통해 대구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라고 대구 시민이 명령하셨다”며 “국민만 바라보겠다. 여야가 협력할 때는 협력하고 싸울 때라도 분명한 대안을 내놓고 싸우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거듭된 도전과 좌절=김 당선인의 ‘대구 도전’은 좌절과 석패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1년 3차례 ‘금배지’를 달아줬던 경기도 군포를 떠나 고향 대구로 향했다. 김 당선인은 당시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것은 월급쟁이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로 내려가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의 벽을 넘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는 야당 정치인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19대 총선(2012년)과 제6회 지방선거(2014년) 두 차례 선거에서는 40% 이상 득표하고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수성갑에 출마했던 19대 총선에서는 이번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 의원에게 12.3% 포인트 차로 패했다. 대구시장에 도전했던 6·4지방선거에선 권영진 현 대구시장에게 14.1% 포인트 뒤졌다.

그러나 김 당선인은 낙선 후 이른바 ‘벽치기 유세’를 하며 지역 민심을 바닥부터 다졌다. 요란한 선거운동 대신 집에 있는 유권자들에게 조용히 지지를 호소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매일 수십곳의 골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김부겸, 대권 직행하나…한계는=더민주 내에서는 일찌감치 ‘김부겸 대선 등판론’이 제기됐다. 대구에서 당선되기만 하면 유력 대선후보 대열에 합류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재신임 국면에서도 ‘김부겸 역할론’이 급부상했지만, 그는 대구 선거에 집중하겠다며 고사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분당 국면에서도 당을 지켰던 김 당선인은 ‘대구 당선’으로 당내 입지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그는 당선 후 일성으로 “야당이 거듭나야 한다. 야권분열을 해결하고, 계파정치 행태가 일소돼야 한다. 대구가 새누리당을 혼냈듯 광주가 ‘더민주’에 경고장을 던졌다”며 당에 일침을 가했다.

다만 김 당선인의 여당 의원 경력은 대권 가도에서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991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기택 공동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김 당선인은 2000년 경기 군포에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3년 만에 이부영 이우재 김영춘 안영근 의원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에 반대하며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함께했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당은 의외로 ‘순혈주의’가 강한 편이라 김 당선인의 여권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지난해 당내 분란이 극심했던 때 뚜렷한 역할을 하지 않아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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