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권여당의 오만과 독단이 여소야대 불렀다

입력 2016-04-13 23:08 수정 2016-04-14 02:35
민심은 무서웠다. 20대 국회의원 총선 투표를 통해 우리 정치에 엄중한 경고 카드를 내밀었다.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명령한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할 능력이 없는 정치를, 오만한 정권을 국민들이 심판한 것이 이번 총선의 의미다.

투표 결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제1당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초라하게 줄어든 모습이다. 참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심판론이 제기됐으나 유권자들은 정권심판론을 택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게 됐다. 선거 초반 과반 의석을 무난하게 달성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겉으로는 조용했으나 집권여당의 오만과 독단, 막장 공천에 분노한 민심에 여당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정권 심판의 핵심은 이른바 친박 세력의 패권주의적 행태다. 막무가내식 공천은 유권자들을 주머니 속 공기돌 정도로 여기는 오만함이었고, 친박과 비박으로 갈린 권력투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권의 수준을 의심케 만들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했다. 그만큼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 분당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의 골은 깊다. 향후 전당대회와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서 또다시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세력이 합리적이고 조화롭게 이 과정을 치러내지 못하면 대선 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번 총선은 박근혜정부 임기 1년8개월을 남기고 실시됐다는 점에서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 친박의 정치가 박 대통령의 ‘배반의 정치’와 ‘진실한 사람’ 언급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민들이 대통령의 정치 개입과 스타일에 엄중한 경고를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주목된다.

선거 결과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국회 탓을 하며 국회가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민은 여당의 과반수 미달이라는 결과로 응답했다. 국회도 변해야 하지만 박 대통령도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답할 차례다.

16년 만에 복원된 3당 체제도 이번 선거의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국민의당은 창당 두 달여 만에 확고한 원내 제3당의 위치를 굳혔다. 특히 국민의당 획득한 높은 정당득표율은 국민들이 기존 양당 체제에 얼마나 염증을 느끼고 실망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원내 3당의 출현은 서로 간에 합리적 양보와 타협 없이 그저 독단과 반대만 횡행하는 거대 양당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측면에선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바람직하다. 3당 체제의 또 하나의 긍정적 요소는 여야 강경 대치가 일상이었던 국회 운영 방식이 캐스팅보트 등장으로 대화와 타협으로 무게추가 옮겨갈 것이라는 점이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무게감도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역구 당선자들이 호남에 편중된 것은 국민의당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안정적 3당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그게 바람직하다.

더민주가 호남을 잃고도 선전한 것은 수도권 유권자들이 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전략적 투표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야권 성향 유권자들이 적극 투표에 임해 더민주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친노·운동권의 패권주의는 정치 혐오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무조건 여당에 반대하는 제1야당의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친노·운동권이 퇴조하기는 했지만 당원 구성 등을 보면 여전히 당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세력이다. 김종인 대표 측과 이들이 대선 후보와 당권을 놓고 파열음을 낼 것이 뻔하다. 양측의 갈등이 더민주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비노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실패할 경우 야권의 주도권이 국민의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소수이긴 하지만 영남에서 더민주 후보가,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고무적이다. 지역감정이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지역감정이 되풀이되는 한 우리나라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 정당들도 지역감정 탓만 할 게 아니라 절대열세 지역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굴, 양성할 책임이 있다. 이런 노력은 게을리 한 채 지역감정 탓만 하니 표가 나올 리 없다. 무엇보다 유권자도 맹목적 충성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역감정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예상보다 의석을 많이 얻었다고 환호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합리적으로 보상해 주기도 하지만, 무섭게 경고할 때가 더 많다. 우쭐하다가는 ‘훅 갈 수 있다’는 점을 20대 당선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20대 국회는 정쟁으로 점철해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쓴 19대 국회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