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 ‘펠리컨 브리프’를 보는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는 13일 살균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의 대응을 이렇게 비유했다. 1994년 개봉한 ‘펠리컨 브리프’는 존 그리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와 소설엔 유전(油田) 개발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자신들 잘못을 덮기 위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굴지의 대기업이 등장한다. 정부가 2011년 가습기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제품 수거명령을 내린 뒤,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옥시가 취한 행태가 영화 속 기업처럼 조직적이고 치밀하다는 뜻이다.
옥시가 2011년 폐 손상 사망 논란이 일자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새로 법인을 설립한 정황도 포착됐다. 옥시는 그해 12월 12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법인 종류를 바꾸고 설립 등기를 새로 했다. 주주·사원과 재산, 상호는 그대로인데 그때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판매하던 법인은 사라지고 다른 법인이 생긴 것이다. 검찰은 옥시 측이 민형사상 책임을 회피하고자 ‘조직 변경’ 절차를 거친 것으로 본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공소 기각’ 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도 조직 변경으로 기존 법인이 소멸됐을 경우 양벌규정에 따른 형사책임이 신설 법인에까지 승계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2005년에 남겼다. 결국 임직원들이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영국에 본사를 둔 법인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조만간 제조·유통업체 관계자 조사를 시작한다. 다른 업체보다 옥시의 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옥시 측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대량 파기하거나 조작한 여러 정황들을 파악했다. 외부기관 시험보고서 왜곡·조작 의혹,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해자 글 삭제 의혹, 살균제 관련 내부자료 파기 의혹 등도 규명할 방침이다. 수사팀은 상반기 안으로 결과를 낼 계획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옥시, 이번엔 법인 바꿔 ‘과거 세탁’ 정황…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조직적 은폐 의혹
입력 2016-04-13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