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남긴 말이다.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의 전신) 감독정책1국장 시절 카드대란 수습과정에서 기자가 “관치가 아니냐”고 묻자 내뱉은 이 말은 신문에 대서특필돼 논란을 빚었다. 카드대란이 우리 경제를 위기로 빠뜨리는 상황에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말했지만, 김 전 위원장의 이 표현은 지금까지 모피아(재무부 출신+마피아), 해피아(해양수산부 출신+마피아), 금피아(금융감독원 출신+마피아) 등 일련의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불거질 때면 인용되는 명언이 되다시피 했다.
이틀 뒤 16일은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 2주년이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관(官)과 민(民)의 유착을 근절하고, 관의 대민 군림을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취해 왔다. 퇴직공무원의 유관기관 재취업 불허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강화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개선됐을지 몰라도 관의 군림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교묘한 피해 가기가 성행하고 있다. 금융위, 금감원 출신 인사가 공직 재직 시 유관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 전무로 각각 내정되는 등 유관기관 재취업 금지 사각지대로 낙하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등은 이들을 연구원 명목으로 영입하고 있지만, 사무실만 차지한 채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삼성 출신의 인사혁신처장이 관의 민간기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부활시킨 공무원 민간근무휴직제 시행과정에서 주중 골프 등 잡음이 들리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일부 기업체는 공무원들의 직위를 높여주고 판공비를 지급하는 등 대우를 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역할에서 제외시키는 등 아웃사이더 취급하고 있다. 민간 휴직에 참여하는 공무원의 연봉을 30% 더 얹어주도록 한 것도 관이 민보다 우월함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으로 보여 찜찜하다. 이도 모자라 판공비와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기업체 입장에서는 이들이 공직으로 돌아간 이후를 염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험을 드는 측면이 강하다.
김대중정부 때 도입한 고위직 개방형 인사의 경우는 거꾸로 민의 관 이해 진작을 위해 민간 전문가에게 직위를 개방하자는 취지였지만 공무원 민간근무휴직제만큼이나 민간인을 아웃사이더 취급하는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금융위가 최근 기업과 소비자 등 현장 목소리를 금융개혁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한 옴부즈맨의 자격 요건에서 금융기관 사외이사 등 이해관계인을 포함하는 문제를 놓고 왔다 갔다 하는 해프닝을 벌인 것 역시 아직 우리 사회가 관과 민의 이해관계 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 폐해에 대한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선진국 공무원들도 관에 있다가 민으로 간다. 잡음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로 인한 부당한 이익 추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이 관으로 가는 것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한국은 기업들이 영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놓다시피 하는 회전문 낙하산 인사가 횡행한다. 기업체는 자신들이 원해 유능한 인재를 끌어오는 선진국 같은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한 본전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해피아와 선주의 유착이 극에 달해 비극적인 침몰로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사건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유가족의 아픔을 만 분에 1이라도 덜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제2의 세월호 사고를 막기 위해 관의 올바른 대민 관계 정립이 시급하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세월호 2주기 그리고 관피아
입력 2016-04-13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