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르미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16세의 자르미나를 학교에서 자퇴시키고 정혼자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하루아침에 학업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헤어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살아야 했던 자르미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그녀는 집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자르미나는 여러 기관을 전전하며 고생하다가 우리나라 정부가 유엔우먼(UNWOMEN) 여성폭력퇴치기금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아프간 여성보호센터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아프간에서 자르미나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약 60%의 아프간 소녀들이 16세 미만에 결혼하며, 이 중 상당수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혼인한다. 조혼으로 소녀들이 일찍 학업과 단절되는 탓에 여성 문맹률은 무려 87%에 이른다. 현재 25세 이상의 아프간 여성 중 정규 교육을 받은 비율은 6%에 불과하다. 그 영향으로 여성 경제활동 종사자는 전체 여성의 20%를 넘지 못한다. 성적 폭력을 포함한 여러 양태의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의 비율은 87%에 이른다. 참으로 아찔한 수치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생각하면 한때 아프간이 여성의 지위를 착실히 향상시켜온 모범 국가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례로 아프간은 미국보다 1년 빠른 1919년에 여성에 대한 참정권을 부여한 국가다. ‘보호’라는 명분 하에 여성의 몸을 가리고 생활공간을 분리하게 한 ‘푸르다(purdah)’ 제도도 1920년대에 폐지됐다. 1940∼60년대엔 여대생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학 캠퍼스를 활보했고 여성 법관·의사·교수가 나왔다. 비극적이게도 이 같은 진보가 과격 극단주의로 인해 전근대적 억압으로 회귀하는 데 3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70년대 말 시작된 외세와의 전쟁과 내전, 테러 속에서 아프간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강화되어왔다. 극심한 가난과 국가시스템 붕괴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96년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간 여성들은 샤리아 율법에 따라 학교에 갈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남자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때로는 공포를 조장하고 공동체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르카, 돌팔매질, 명예살인 등도 여성에 대한 대표적 악습이다. 이 같은 상황은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서 반드시 인권과 인도주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만 한다. 아프간 여성의 해방 없이 진정한 아프간 평화와 재건은 이룩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아프간 내 여성의 지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단기간 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여성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온 국가다. 이러한 한국의 경험과 목소리는 아프간 여성과 지식인층에 큰 호소력을 갖는다. 우리 정부는 유엔개발계획(UNDP), 유니세프,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유엔우먼 등 국제기구와 손잡고 2013년부터 아프간 여성에 대한 보건·교육·직업훈련 분야에 약 6000만 달러를 지원해 왔다. 편모 여성가장에 대한 직업훈련 실시, 여아 학교 급식 제공, 산전 관리와 산과 응급시설 보강이 그 예이다. 여성폭력 희생자 치료 및 보호 사업도 활발히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자르미나는 우리 정부 지원 하에 여성보호센터가 제공하는 심리치료와 상담을 통해 심신을 추슬러 나가고 있다. 그녀가 하루빨리 회복하여 당당히 살아가길 응원한다.
진기훈 주아프가니스탄 대사
[기고-진기훈] 아프간 소녀를 위한 기도
입력 2016-04-14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