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의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를 깨웠다.”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애청하는 40대 주부의 한 줄 관람평이다. 주연배우 송중기와 송혜교의 극중 알콩달콩 로맨스에 본방사수는 말할 것도 없고 재방은 필수고 다시보기까지 한다. 남편은 ‘태후’가 방영되기 30분 전후 눈앞에서 얼쩡거리면 절대 안 된다. 안구를 정화해야 하는데 이물질이 왔다 갔다 하면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태후’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심을 사로잡은 송중기의 캐릭터가 주효했다. 모든 것이 송중기로 시작해 송중기로 끝난다. 이른바 ‘기승전송중기’가 당연하고 ‘송중기 신드롬’마저 일고 있다. KBS 9시 뉴스에도 출연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그를 만나 꿀 떨어지는 시선을 보냈으니 오죽하겠는가.
송중기가 맡은 특전사 유시진 대위는 조국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멋진 남자다. 차가 벼랑에 매달려 있어도, 지진과 납치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재난지역에서도 모든 위기를 척척 해결하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캐릭터다. 송중기는 ‘꽃미남’ ‘밀크남’ 이미지에 ‘군필’ ‘남성미’까지 더해 여성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평소에는 능청스럽고 장난기 넘치고 때로는 능구렁이처럼 행동하지만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거나 군인 신분으로 돌아오면 누구보다 진지해지는 캐릭터, 목숨보다 더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남자다. 외모는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미소년인데 리더십 강한 남자다운 매력과 한 여자만을 오매불망 사랑하는 그에게 반하지 않을 여성이 있을까 싶다.
연인에게 날리는 대사는 또 어떤가. “허락 없이 키스한 거 말입니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미인과 노인, 아이는 보호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입니다.” “이 남자, 저 남자 너무 걱정하는 남자가 많은 거 아닙니까? 이 시간 이후 내 걱정만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이 제일 설레요. 미인이랑 같이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오글거리고 능글맞지만 달달한 멘트를 싫어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이고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만취 상태에서 “제 여자친구세요? 내 여자친구 되게 예쁩니다”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정신을 차려 임무를 수행하는 등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을 초인처럼 해낸다. 또 총에 맞아도 쉽게 죽지 않는다. 이에 대해 “불사신이냐”며 비아냥거리고, “막장 드라마 못지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 재미와 활력을 선사했다. 모처럼 중국에 한류를 불러일으키는 등 국가대표 드라마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태후’는 14일 마지막 편이 방송된다. 결말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둘이 사랑을 확인하는 해피엔딩이다” “아니다. 누군가가 죽는 새드엔딩이다” “모든 게 한바탕 꿈속 이야기였다” 등등.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당분간 후유증은 남을 것이다. 드라마와 너무 다른 현실에 짜증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다.
드라마 얘기하다 정치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현실로 돌아가 보자.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많은 후보들이 송중기 같은 이미지를 내세웠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 중에서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완벽남’이나 ‘능력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약속일지언정 소중히 여기는 선량(選良)이면 좋겠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광형] 그런 남자 없지 말입니다
입력 2016-04-13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