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양사면 배우개길. 각종 농작물들의 파종을 앞 둔 논과 밭, 비닐하우스가 드라마 ‘전원일기’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 4월의 농촌에서 서정훈(51·일벗교회) 목사를 만났다. 악수를 청하며 건넨 서 목사의 손에서 농부의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수만 번 농기구를 매만지며 단단해졌을 손마디의 굳은살과 손톱 안쪽으로 깊게 박힌 진갈색 흙 알갱이들이 거친 촉감과 함께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서 목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가공공장에서는 친환경 두부 생산 공정이 진행 중이었다. 이곳은 서 목사가 농업 생산공동체로 시작해 9년째 사회적기업으로 운영중인 ‘콩세알’의 핵심 공간이다. 친환경 농사법으로 재배된 콩이 세척·선별돼 콩물로 생산되고 응고된 콩물이 두부의 형태로 포장돼 저온창고에 저장되는 과정은 ‘ㄷ’자 형태의 동선을 따라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공정을 소개하는 서 목사에게선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콩 속에 있는 사포닌 성분 때문에 콩을 끓이는 과정에서 거품이 생깁니다. 소포제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간단하게 해결되지요. 하지만 수년 간 연구한 끝에 화학첨가물 없이 간수를 먹이는 방법을 찾아냈지요.”
◇기업 위한 고용? 고용 위한 기업!=서 목사의 고집은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콩세알’ 운영원칙에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콩세알’에는 30대부터 70대까지 넓은 연령대의 직원 20명이 근무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장애인, 고령인, 저소득층, 장기 미취업자 등 취약 계층이다. 대표 식품을 두부로 선택한 것도 지역 내에서 일정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된장, 청국장 등 장 종류는 생산공정의 특성상 일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지만 두부는 매일 생산해 제품을 출하할 수 있다. 두부를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두부를 만들어 파는 셈이다. ‘콩세알’이란 이름은 농부들이 콩을 심을 때 한 알은 자신이 먹고, 한 알은 이웃과 나눠 먹고, 한 알은 벌레나 새가 먹도록 세 알을 심는 것에 착안했다. 이름에서부터 생명, 나눔, 순환의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7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순이(62·여)씨는 “건강한 공동체에서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한 식품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며 웃었다. 공장 옆에서 볍씨 열탕 살균 작업을 하던 김주동(64) 덕하3리 이장은 “예전엔 볍씨를 24시간 동안 농약에 담가두었지만 서 목사가 친환경 농법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지금은 30여 농가가 친환경 쌀을 생산하고 있다”며 “서 목사와 일벗교회의 개척정신이 강화지역 농촌산업에 창조경제를 접목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농업인의 꿈을 응원하다=서 목사는 농업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역의 농지은행으로부터 농토를 임대받아 제공하고 농사 기술도 전수하고 있다. ‘콩세알’ 영농팀에 근무하는 정재원(34)씨도 그 중 하나다. 취업을 준비하던 정 씨는 3년 전 농사 체험에 참여하면서 재미를 느껴 아예 진로를 바꿨다. 그는 “다양한 농사기법을 배워 노하우가 쌓이면 청년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젊은 농사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콩세알’ 영농팀은 지역 내 작목회센터의 역할을 감당하며 친환경 쌀, 순무, 고구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영농팀이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친환경 두부·순두부·유부·고구마묵 등으로 생산하는 것은 가공팀의 몫이다. 여기에 발효팀이 만든 각종 장과 장아찌를 곁들여 ‘콩세알 식당’에서 친환경 음식을 선보인다.
서 목사는 “요즘도 강화도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연 그대로를 표방하는 ‘콩세알’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멈출 수 없는 섬김의 약속=사회적기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넉넉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이웃을 돌보는 마음만은 풍성하다. ‘콩세알’은 주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역 내 독거노인 150여명에게 무상으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17년 전, 서 목사가 지역 섬김의 일환으로 100여 명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 사이 농업 생산공동체였던 조직을 사회적기업으로 키워내고, 9년 동안 ‘콩세알’을 운영하면서 한때 직원이 50명이 넘을 만큼 몸집이 커졌다가 줄어드는 부침도 겪었다.
서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역과 이웃을 위한 섬김을 멈춰선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땅으로부터 과실을 얻은 농부로서의 다짐이자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 서정훈 목사와 일벗교회
오랫동안 꿈꿔 온 농업 생산공동체 실천
성도 20여명 모두 노동하고 함께 사역
서정훈(일벗교회) 목사 집안은 11대에 걸쳐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신학 공부를 위해 잠시 강화도를 떠났다가 1999년 다시 돌아온 서 목사는 부친의 농사일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꿈꿔 온 농업 생산공동체 활동을 실천에 옮겼다. 신대원 과정에서도 생태신학 관련 논문을 썼다. 농도생활협동조합에서 도농 직거래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통해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가치를 공동체에 이양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친환경 농법이 생소했던 당시에 농약을 쓰지 않고 논에 오리를 풀어 놓는 모습을 보고 마을 어르신들이 ‘정훈이가 도시에 나갔다 오더니 이상해졌다’고 말씀하기도 했어요.(웃음)”
가공공장 옆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일벗교회는 규모부터 생김새까지 전형적인 농촌의 작은 교회다. 교회 옆 마당에는 장독대 150여 개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친환경 장을 품고 있다. 성도 수는 20여명으로 단출하지만 모든 성도가 농업 생산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며 자연과 노동, 사역을 벗 삼아 생활한다. 소박하게 인쇄된 주보 어느 곳에도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이라는 직분만 적혀있을 뿐이다. 말랑말랑한 삶은 콩이 모여 단단하게 덩이를 이룬 메주와 닮았다.
서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삶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라며 “교회 근처에 성도들과 함께 거주할 공동주택 건축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활동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녹색 은총’이라고 강조했다.
“각박하고 소비적인 삶이 아닌 건강하게 나누고 섬기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생산공동체이자 신앙공동체인 일벗교회의 비전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말, 참 많이 듣지요. 도(都)가 아닌 농(農)에서 건강한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강화=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한국의 생명교회-인천 강화 일벗교회] 콩을 쒀서 건강한 신앙 공동체 빚다
입력 2016-04-13 18:31 수정 2016-04-13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