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조직적 은폐 정황

입력 2016-04-12 21:11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주범 격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측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조직적으로 은폐 내지 파기, 조작한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목표도 사건 원인 규명에서 옥시 측의 부도덕한 범행 전모를 파헤치는 것까지 확장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2011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조사에 나서자 옥시 경영진 역시 치밀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옥시를 압수수색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된 수백 건의 내부회의 자료와 보고서, 이메일 등을 확보했다. 특히 회사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정부·수사기관의 동향과 사안별 대응방안, 반박 전략 등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한 논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옥시가 내부 회의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선별하고, 불리한 증거는 없애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의심한다. 검찰 관계자는 “옥시의 행각 때문에 수사 방향이 바뀔 정도”라고 말했다.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폐 손상 유해성 인과 관계를 인정한 정부 발표를 반박하기 위해 별도 연구를 의뢰 및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실험결과를 바꾸려 한 정황도 나온 상태다. 옥시는 2012년쯤 국가공인 시험기관에 의뢰한 연구의 중간결과가 ‘폐 손상과 살균제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나오자 이후 실험결과는 수령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옥시 측이 해당 시험기관을 포섭하려 한 단서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옥시는 결국 자신들 입장과 상반되는 이 기관의 보고서는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 자사 제품과 폐 손상 발병에 인과 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서울대와 호서대의 실험 보고서를 제출했다.

옥시의 홈페이지 고객 상담게시판 게시글 가운데 가슴통증 등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 사용 후유증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글이 압수수색 전 무더기로 지워진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옥시 측 서버를 복원해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회사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고의 삭제라면 옥시 측이 제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덮으려 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에 대해 옥시 측은 “검찰 수사 중인 사안으로 본 건에 대해선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220여명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제조·판매사 관계자 소환에 착수한다. 옥시 측 30여명을 포함해 50명 이상이 수사 대상이다.

노용택 황인호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