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신학의 산실로 불리는 한신대 제7대 총장으로 강성영(54) 교수가 선임됐다. 채수일 전 총장의 임기 전 사퇴로 시작된 신임 총장 선출 과정은 내내 순탄치 않았다. 이사회 결정에 반발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등 학내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오산시 한신대 캠퍼스에서 만난 강 신임 총장은 담담하게 현 상황에 대한 입장과 향후 비전을 밝혔다. 인터뷰는 강 총장이 임시 집무실로 쓰고 있는 교내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우여곡절 끝에 총장이 됐다.
“축하보다 걱정과 위로를 많이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총장이 된다는 건 과거처럼 화려한 영예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이번 일로 더 겸허해지고 구성원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경청하게 됐다.”
-일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와 학생들은 민주적으로 총장 후보자를 선출했으나 이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31일 총장 선출 이사회 당시 학생들은 회의실을 점거했고, 하루 동안 이사들이 감금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사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현장에 있던 학생들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어떻게 사태를 풀어갈 것인가.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회를 통해 간선제 형태로 총장을 선출해왔다. 늘 학내 구성원의 소리를 반영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1989년 대학민주화 과정에서 대학본부 학생 직원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4자협의회 합의로 총장 후보자를 이사회에 추천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 교수협의회의 총장 후보자 선출 과정엔 절차상 하자가 있었고, 이 때문에 기획처장이 사퇴했다. 또 학생들의 투표 참여율도 40%가 채 안됐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결과를 존중하라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총장 선거에 반영하자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앞으로 절차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4주체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
-어떤 리더십으로 학교 안팎의 과제를 풀어나갈 것인가.
“한신대 신대원장으로 지내는 동안 ‘사람은 착한데 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떤 조직이나 화합과 인화가 제일 중요하다. 혁신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숲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혁신을 추구하면 구성원 간 화합이 쉽지 않을 테고, 통합을 추구하다보면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인기 없는 총장은 되겠지만 나쁜 총장은 되지 않겠다.”
-한신대는 장공 김재준 목사와 안병무 교수, 문익환 목사 등 쟁쟁한 인물을 배출한 진보 신학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정신’은 약해지고 신대원 입학생도 감소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진보성도 안 보인다. 신학교육 정상화 방안은 무엇인가.
“서울 캠퍼스를 기반으로 융복합적 종합대학원을 만들 생각이다. 진보적인 신학 담론을 만들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헌신했던 전통을 다시 살려내겠다. 여전히 한신대는 약자에 무관심하고 약탈적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요새로서, 대학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보가 늘 선일 수도, 보수가 언제나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다양한 의견이 한 사회 안에서 존중될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진보의 핵심적 가치는 자기 성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이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80년 한신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36년이 흘렀다. 학부 중심의 오산 캠퍼스는 재정문제와 전임 총장 때 단행한 구조조정으로 학내 갈등이 누적된 상태다.
“처음에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인재를 양성해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케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종교가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복음적 휴머니즘과 세속적 인문주의의 결합을 통해 기독교 대학으로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대학은 채플이나 기독교교육 커리큘럼이 아니라 교육의 목표와 추구하는 인재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서로 다른 인간이해와 세계관을 가졌지만 두 운동이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근대의 문을 열었다.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가 교수로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인문학을 주로 연구하던 곳이었다. 존 위클리프는 옥스퍼드대, 얀 후스는 프라하대 출신이었다.”
-향후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한신대만이 내세울 수 있는 특성화된 학부를 어떻게 지원할지, 학교 제도와 시스템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바꿀 것인지 학내 논의를 시작하겠다. 재정혁신위원회를 만들어 외부 지원을 확보하고, 거제도 등에 학교가 갖고 있는 자산을 통해 재정 안정화를 추구하겠다. 기장 총회와도 소통을 강화해 한신대에 투자하면 의미 있는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학내 갈등을 다독이고 해소하는 것에 힘을 쏟겠다.”
오산=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한신대 총장 선임된 강성영 교수 “사회적 책임 다했던 ‘기장 정신’ 되살릴 것”
입력 2016-04-12 18:56 수정 2016-04-13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