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북 문경 옛길 여행

입력 2016-04-13 17:39
경북 문경시 어룡산 기슭에서 본 진남교반의 물돌이 풍경이 환상적이다.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힌 진남교반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영강 위로 철길과 국도가 가로 놓여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년 후인 1594년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교귀정.
대야산 용추계곡의 용추폭포. 하트 모양의 소(沼)가 멋지다.
고모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본 진남문. 오른쪽 성벽길을 따라가면 토끼비리와 이어진다.
조령(鳥嶺). ‘새들도 넘기 힘든 고개’가 문경새재다. 날개를 달고 높이 날 수 있는 새에게도 힘든데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에게는 오죽했으랴. 그런데도 발품을 팔아가며 이 가파른 새재를 넘어야 하는 이유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최단거리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과 동래를 잇는 조선시대 주요 대로인 영남대로도 이곳을 통과한다.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데는 여러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대표적인 길이 죽령, 추풍령, 문경새재였다. 문경새재는 가장 빠르고 큰 길이었다. 더욱이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든지,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던 반면, 문경(聞慶)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지명이어서 선호됐다고 한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는 영남선비에게도, 반대로 한양에서 임명장을 받고 부임지로 향하던 관리에게도, 막중한 임무를 받고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에게도, 무거운 짐을 나르던 보부상에게도 이 길은 힘들지만 소중했다. 길손들의 애환과 사연이 서려있는 새재 옛길은 이제 등산로, 오솔길, 산책길로 남아 있다.

문경새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통한다. 장인 홍화보가 조령관 수비를 담당할 때 정약용은 문경을 왕래하며 ‘새재를 넘으며’ 등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는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은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라고 읊었다. 내로라하는 조선의 문사들이 남긴 새재에 관한 시가 줄잡아 370편에 달한다고 한다. 험난한 새재를 걸으면서도 선비들은 고달픔을 탓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시상을 풀어냈다.

우리나라 옛길의 고전으로, 한국인이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최고의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도에는 국가명승지로 지정된 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보고 싶은 곳 1위의 반열에 올랐다. 한 해 400여만 명이 찾는 곳이다.

여정은 옛길박물관에서 시작된다.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길’을 주제로 개관했다. 문경새재를 오르며 지고 다닌 괴나리봇짐부터 문경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타박타박 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진다. 15분 정도 평지를 걸으면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이다. 돌로 쌓아놓은 성채가 위풍당당하다. 새재 3개의 관문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도 잘 보존돼 있다.

제1관문을 지나면 왼편에 화려한 궁궐과 기와집, 초가집이 어우러진 마을이 나타난다. 조선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드라마 촬영장이다. 조령산의 산세가 개성의 송악산을 빼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것. 태조왕건, 대조영, 대왕세종 등 인기 사극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됐단다.

발길을 옮기면 길은 다시 호젓해지고 고갯길을 지났던 옛사람들의 흔적과 수시로 마주친다. 조령원터, 교귀정이 차례로 나타난다. 조령원은 지금으로 말하면 관사쯤 된다. 영남대로를 오가는 관리들을 위한 시설이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교귀정은 경상감사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던 곳에 세워진 정자다. 옆에 뿌리를 내린 노송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산불됴심(조심)’이라고 쓴 표석을 지나면 제2관문 조곡관이 맞이한다.

조곡관을 지나면 제법 길이 가파르다. 높은 고갯길에서 걸음을 접고 잠시 고향 생각을 하면서 불렀음직한 ‘문경아리랑’이 비석으로 세워져 있고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조령3관문 직전에 책바위가 나타난다. 책바위에 전설이 얽혀 있다. 문경에 살던 몸이 허약한 젊은이가 도사를 찾아가 건강비결을 물었다. 집터를 누르고 있는 돌담을 책바위에 옮겨놓으라는 답을 들었다. 돌담을 헐어 3년에 걸쳐 옮기다보니 몸이 튼튼해졌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원급제를 했다. 이후부터 유생들은 이곳에 들러 급제를 빌었다고 한다.

마지막 종착지 제3관문 조령관에 도착했다. 총 6.5㎞, 편도 2시간의 여정이다. 옛길의 역사와 나들이의 낭만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주흘산의 영봉과 주봉이 보이고, 조령산도 또렷하다. 이 곳을 넘어서면 충북 괴산이다. 충주의 남한강 뱃길과 연결돼 서울 한강 나루터에 닿았다.

문경새재를 넘기 전 영남대로 중 최고의 험로로 꼽히는 토끼비리가 자리잡고 있다.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토끼비리는 문경 오정산의 층암절벽 사이로 난 길이 1㎞, 폭 1m의 벼랑길이다. 경북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바윗길은 오랜 세월 발길에 부대끼며 반질반질 윤이 났다. 곳곳에 데크가 설치되고 밧줄이 연결돼 아찔함은 덜하다. 진남교반은 오정산과 낙동강 상류인 영강, 그리고 옛 국도 3호선이 나란히 S자로 굽어 돌아 ‘산태극 물태극 길태극’으로 불린다.

토끼비리를 통과한 영남대로는 고모산성 진남문으로 이어진다. 4∼5세기쯤 신라가 북진을 위해 축조한 고모산성은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옛 모습을 찾았다. 고모산성에는 옛 서낭당과 복원된 주막이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전통 찻사발 축제가 오는 30일부터 9일 간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사기장이 들려주는 찻사발 이야기’를 주제로 열린다. 문경사기장의 하루, QR 찻사발 장원급제, 문경 밤 사랑 축제, 발물레 빨리 돌리기 등 가족단위 체험행사와 차별화된 공연이 마련된다.

문경 온천지구에서 열리는 ‘문경 밤 사랑 축제’는 흥겨운 음악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올해는 중국의 대표적 도예 도시인 이싱(宜興)시의 도예가와 일본에서 조선 도자기 맥을 잇고 있는 심수관 도예가를 초청, 한·중·일 세 나라의 도자기 국제교류전이 열린다.

또 ‘아름다운 찻자리 한마당’에서는 고려시대 차 겨루기를 재현한 ‘가루차 투타 경연대회’와 일본의 우라센케 다도, 중국의 오운화차 다예표연(五韻花茶 茶藝表演) 등 세 나라의 다례시연도 경험할 수 있다.


여행메모

온천·철로자전거… 볼거리 즐길거리 다양

사료에 거정석 섞어 먹인 약돌한우 ‘별미’



수도권에서는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문경새재IC에서 빠지는 게 좋다. 국도 3호선을 타고 마성 방향으로 가면 고모산성에, 반대 방향으로 가면 문경새재에 닿는다.

문경새재 앞에 문경관광호텔(054-571-8001)과 문경새재유스호스텔(054-571-5533) 등이 있다. 문경온천(054-572-3334)은 탄산천과 알칼리성 온천수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철로자전거도 유명하다. 진남역, 불정역, 가은역에서 출발한다. 석탄박물관(054-571-2475)에서는 갱도체험을 할 수 있다. 문경새재오픈세트장, 가은오픈세트장, 관광사격장 등 볼거리·즐길거리가 즐비하다.

먹거리로는 약돌한우가 유명하다. 약돌(거정석)을 사료에 섞어 먹인 한우를 숯불에 구워먹으면 일품이다. 약돌돼지고기는 고추장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굽는 게 좋다. 쫀득쫀득한 비계와 야들야들한 살코기가 별미다. 문경약돌한우타운(054-572-2655)이 유명하다. 모심정(054-571-1845)은 문경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만 사용하는 전통음식교육체험관이다(문경시 관광진흥과 054-550-6321).

문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