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에 대리만족 쾌감… ‘정의로운’ 드라마 인기

입력 2016-04-13 04:01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게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우리 경찰이 해야 될 일이지 않습니까?”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재한 형사(조진웅)가 한 말이다. 미래에서 무전을 받고 있는 박해영 경위(이제훈)에게 “20년 뒤에는 달라져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 대사에 씁쓸한 공감을 보냈다. 우리가 실제 맞닥뜨린 현실에서 숱하게 경험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잘못을 꼭 짚는 대사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불안한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동네변호사 조들호’(KBS) ‘피리 부는 사나이’ ‘기억’(이상 tvN)이 드라마에서나마 정의구현을 해나가고 있다.

추리극이나 법정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다. 그럼에도 시청률이나 화제성 측면에서 뜨거운 반응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현실과는 달리 정의구현을 이루는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에는 약자와 서민의 편에 서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억울한 이들을 돕는 변호사 조들호(박신양)가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 조들호는 재벌 2세 대신 누명을 쓴 노숙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장사가 잘된다는 이유로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주지 않고 내쫓는 건물주의 횡포에 맞선다.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불공평과 불합리가 조들호를 통해 법정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박신양의 신들린 듯한 연기력이 드라마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웹툰에서는 내부고발자, 불공정 계약, 건물주 횡포 등의 문제를 다뤘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는 비뚤어진 정의감으로 테러를 조장하는 ‘피리남’이 등장한다. 이 피리남에 맞서는 이들이 서울시경찰청 소속 위기협상팀 주성찬(신하균)과 여명하 경위(조윤희)다. 이들은 위기상황에서 무력진압 대신 대화와 소통으로 범죄를 막아내는 일을 한다.

위기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다. 범죄자와 협상팀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위기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내는 게 이들의 방식이다. 무차별적인 비난과 편 가르기가 익숙한 우리 사회에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기억’은 성공한 로펌 변호사 박태석(이성민)이 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에도 ‘돈 믿고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재벌 2세 악역 신영진(이기우)이 등장한다. 신영진의 지저분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던 박태석의 변화가 앞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지난달 종영한 ‘시그널’은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사회정의를 깊이 있게 다뤘다.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 밀양여중생성폭행사건, 대도 조세형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2월 종영한 ‘리멤버-아들의 전쟁’(SBS)도 악행을 일삼던 대기업 회장 남일호·규만 부자(父子)가 법으로 처벌을 받는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결말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이정섭 PD는 “법이 우리에게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싶다. 이 과제를 달성한다면 시청률을 떠나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