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우리 땅에 있던 많은 외국인 중 한 명만이 3·1만세운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는 운동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동시에 만세운동 당일 카메라를 들고 나가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그가 남긴 사진과 글을 통해 3·1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외국인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민족대표에 더해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사진) 박사다. 그는 3·1운동뿐만 아니라 일제가 자행한 화성 제암리와 수촌리 학살의 참상도 세계에 폭로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20년 일제의 살해 위협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1958년 국빈 자격으로 돌아와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 양성과 약자를 돕는 데 힘쓰던 그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 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과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는 12일 서울대에서 스코필드 박사가 100년 전 캐나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을 기념하고 서거 46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을 열었다. 추모식은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스코필드 박사 묘역에서 시작됐다. 정운찬 전 총리와 에릭 윌시 주한캐나다 대사 등 20여명이 참석해 헌화하고 분향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한국 이름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자에 담긴 뜻과 같이 호랑이처럼 강한 의지로 일제 지배 하에 고통 받던 한국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며 “이런 분이 우리 안에 계셨다는 사실은 서울대의 영광이자 한국인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식
입력 2016-04-12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