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환(50·사진)은 28년차 무명 연극배우다. 그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먼 역으로 캐스팅됐다. 작은 무대도 아니다. 14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유명 연출가 한태숙이 맡은 작품이다. 스타 배우가 아닌 인지도 낮은 조연 전문배우 손진환의 캐스팅은 상당한 파격이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6월쯤 로먼 역 캐스팅 전화를 받은 뒤 1∼2개월은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큰 작품에서 주역을 맡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많이 됐다”면서 “여전히 부담이 크지만 한태숙 선생님을 믿고 따라왔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1987년 극단 가교의 워크숍 1기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우연히 뮤지컬 ‘가스펠’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후 연기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89년 2월 샤르트르의 ‘무덤 없는 주검’ 가운데 헌병2로 정식 데뷔했다. 그는 “워낙 소심한 성격과 평범한 외모라 고교 시절엔 차마 배우의 꿈을 꾸지 못했다. 그저 맛보기로 3년 정도 해보려고 했던 것이 연기를 전공하고 프로 배우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면서 “대학로의 수많은 배우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나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캐스팅 전화를 받을 때마다 버틸 힘을 얻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극단 가교를 시작으로 그는 극단 신시와 극단 골목길 등에서 배우로서 경력을 쌓았다. 한태숙과는 2005년 예술의전당이 제작한 ‘리처드 3세’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연극을 만들어가는 한 선생님의 방식이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것과 달라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인물의 내면에 깊이 천착해가는 선생님의 방식에 점점 익숙해졌고,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라고 말했다.
49년 초연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대표작이다. 30년대 대공황을 배경으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삶을 통해 미국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로먼 역은 중견 남자배우들이 가장 희망하는 역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태숙은 그를 캐스팅한 이유로 “로먼이 현실과 과거,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신분열까지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에너지가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면서 “손진환씨는 묵직한 에너지가 있는 데다 오랫동안 삶의 주인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로먼을 떠올리게 했다”고 설명했다.
손진환은 이번에 로먼의 극중 나이 60세를 표현하기 위해 정수리 근처까지 머리를 미는 등 ‘세일즈맨의 죽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는 “배우로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비장하게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연극배우 28년 만에 생애 첫 타이틀롤 맡은 손진환 “두 달 되도록 믿기지 않았다”
입력 2016-04-12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