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투표일의 아침이 밝았다.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는 낡은 정치를 물갈이할 수 있는 기회다. 투표의 향배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래서 선거는 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소와 절망으로 가득하다. 최악의 공천파동과 졸속 선거운동, 선심성 공약 남발, 케케묵은 색깔론 등 현실정치는 난장판이다. 과연 그리스도인은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투표하셨을까.
미국 이머징교회운동의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최근 개신교 단체인 ‘소저너스’에 올린 글에서 “이 땅의 백성으로 살았던 예수님이 투표를 거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선거를 회피하는 것은 권세 잡은 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로고스서원 김기현 대표도 “하나님나라의 왕이 세속국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을지는 의문스럽다”면서도 “성전세 논쟁에서 보듯 덕을 위해, 불필요한 논란 종식을 위해서는 투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복음주의협회 존 레데콥 전 회장은 성경에서 정부와 정치 관련 구절 160개를 뽑아냈다.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의 ‘시민불복종’을 칭찬하고 상을 주었으며(출 1:15∼21) 이스라엘 장로들에게는 이집트 왕에게 압력을 가하라고 권고했다(출 3:18). 예수님은 지방 성전세 납부를 지지했고(마 17:24∼27) 로마 황제에게 세금 납부하는 것을 승인했다(마 22:15∼22). 세례요한은 유대 분봉왕 헤롯의 악행을 비판했다(눅 3:18∼20).
사도 바울은 “위로부터 온 권세에 복종하라”(롬 13:1)고 가르친다. 성경 주석가들에 따르면 이 구절은 굴종의 강요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권세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하라는 의미다. 만약 정부가 주님의 자리를 찬탈하고 거스를 때는 불복종할 수도 있다. 서울 초동교회 손성호 목사는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에게 선거는 복종해야 할 권세가 아니라 따르고 싶은 지도력을 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치발전소 박상훈 대표는 11일 교회2.0목회자운동이 주최한 강좌에서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국가관료주의와 자본의 득세로 정치가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시민들은 투표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정치력을 강화해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독교인 가운데 정치를 탐욕스런 인간들의 관심사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이웃 사랑을 실천할 크리스천이라면 좋은 정치에 대한 관심은 피할 수 없는 소명”이라고 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형원 원장도 “투표는 기독 시민으로서 정치참여의 출발점”이라며 “당장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투표해야 한다. 변화는 점진적”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통해 일하신다. 성경의 정치적 상황에 모세와 모르드개, 에스더와 다니엘이 있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존 웨슬리와 윌리엄 윌버포스, 잭 엡 등이 있다. 웨슬리는 전도자이면서 사회적 의를 선포했던 선지자였다. 윌버포스는 영국 의회와 언론에서 ‘성도당(the Saints)’이란 조롱을 받으면서도 클라팜 공동체를 통해 노예제 폐지를 이끌었다. 캐나다 기독의원 엡은 모든 상업용 여객기에서 금연토록 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기독교적 가치를 지닌 선한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현대적 정의는 로잔언약(1974)에서 찾을 수 있다. 로잔언약은 “복음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둘 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로잔언약의 기초를 입안했던 존 스토트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와 세속국가) 두 나라의 시민이며 두 나라 모두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은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순교일(1945년 4월 9일)이었다. 그는 생전에 “악 앞에 침묵하는 것은 악 그 자체다.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며 적극적 정치 참여를 주문했다.
총선을 하루 앞둔 12일, 투표 참여 독려는 계속됐다. ‘투표 짱! 기독인 선거대책연대(공동대표 정진우 진광수 정금교 목사)’는 “이번 총선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며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하고 양심적인 일꾼을 선택하자”고 당부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현실정치 실망스러워도… 예수님이라면 투표하셨을 것”
입력 2016-04-12 19:25 수정 2016-04-12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