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8일 김학범(56) 성남 FC 감독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축구 오디세이’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신문선 당시 성남 대표이사가 “감독직을 맡아 달라”고 했고, 김 감독은 망설였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각급 대표팀 전술을 수립하는 일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성남이 워낙 망가져 있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도 않았다. 삼고초려 끝에 김 감독은 ‘뜻밖의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기에서 잠깐! 축구 야당 인사로 꼽히는 김 감독의 축구 오디세이를 살펴보자. 박사 출신인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1999년 이후 한두 해를 빼고는 매년 해외로 나가 경기를 본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행선지도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는다. 유럽은 물론 남미와 북중미까지 두루 돌아다니고 있다. 축구 순례에 대해 그는 “현대 축구의 트렌드는 늘 바뀐다. 내가 남들보다 먼저 전술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외로 나가서 미리 보고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감독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것도 장점이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그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성남 일화(성남 FC 전신) 사령탑에 올라 K리그 우승(2006년)을 이끌었다. 이어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중국 허난(河南) 전예 지휘봉을 잡았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8경기 연속 무승(3무5패)에 그치는 저조한 성적을 냈지만 지역 여론의 평가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2012년 7월부터는 강원 FC를 이끌었지만 얇은 선수층 때문에 자신의 축구를 실현하지 못하고 13개월 만에 하차했다.
2014년 9월 5일 다시 성남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의 입에선 한숨부터 나왔다. 선수들은 잡초 같았다. 거친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모기업의 철수와 팀 해체 위기를 겪은 선수들은 불안한 미래에 떨었다. 성남은 2013년 10월 시민구단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박종환 감독에서부터 이상윤 대행, 이영진 대행으로 체제가 계속 바뀌면서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흔들렸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부실한 체력이었다. “경기가 60분을 넘어가자 선수들이 걸어 다니더군요. 몸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얘기죠.” 김 감독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김 감독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축 처진 잡초들을 하나하나 돌봐 건강한 화초로 키워냈다. 그 결과 2014년 11월 23일 성남은 대한축구협회 FA컵 정상에 올랐다. 2014 시즌 K리그 클래식 9위에 그쳤던 성남은 지난 시즌엔 5위에 자리를 잡았다. 또 시민구단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성과도 이뤘다. 이번 시즌 개막 전 중위권으로 분류됐지만, 12일 현재 3승1무(승점 10)로 1위에 올라 있다.
김 감독은 상대의 숨통을 조인 후 강력한 한 방으로 무너뜨리는 ‘역습 축구’를 구사한다. 원동력은 강한 체력이다. 성남 선수들은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동계훈련 동안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23일까지 자비를 들여 스페인으로 축구 순례를 떠나 세비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엄청난 훈련량을 목격한 김 감독은 헐떡이는 성남 선수들에게 “엄살떨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 감독은 선수들 각자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티아고(23)다. 지난 시즌 포항 스틸러스에서 25경기 출장에 4골에 그친 티아고는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4경기 연속 골(총 4골·득점 공동선두)을 넣으며 ‘보물’로 거듭나고 있다.
성남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감독님이 티아고의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살려주는 데 주력했다”며 “상대 수비수들이 황의조에게 몰릴 것으로 예상한 감독님이 티아고에게 ‘득점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잡으라’고 주문했는데, 이게 주효한 것 같다”고 했다.
전략과 선수 관리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김 감독 덕분에 성남은 기업구단들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팀이 됐다. 성남을 시도민구단의 ‘롤 모델’로 만드는 것이 김 감독의 꿈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열공 김학범 성남 FC 감독의 ‘축구 오디세이’
입력 2016-04-12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