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덕환 <16> “장애인 자활의 꿈이 나를 지탱해준 힘”

입력 2016-04-13 17:58
주님이 주신 지혜로 제정된 제2회 장애인 직업 재활의 날 행사를 마치고 보건복지부 관계자들과 함께한 정덕환 장로(앞줄 가운데).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예수님은 진흙을 발라준 뒤 1200m나 떨어진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다. 그 자리서 눈뜨게 해 주신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예수님이지만 내가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연못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끊임없이 매달리고 기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에덴하우스와 주식회사 ‘형원’은 장애인이 일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장애직원들에게 평균 110만원 정도의 월급과 5대 보험을 모두 제공해줬다. 이는 전국 중증장애인의 평균 월급의 3배 수준이었다. 중증장애 직원 중 숫자를 제대로 세는 이들이 10명도 채 안 되고 정상인이 하루면 할 일을 일주일씩 붙잡고 있어도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일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장애인은 설 땅이 없다.

2009년 한국장애인 작업재활시설협회 회장을 맡아 장애인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다. 전국에 470여개의 직업재활시설이 있지만 모두가 열악했다. 난 장애인에게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고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취임식 날인 10월 30일을 ‘직업재활의 날’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다. “10월 30일의 1030은 ‘일(1)이 없으면(0) 삶(3)도 없다(0)’는 뜻입니다. 장애인에겐 그만큼 일이 절박하다는 것이죠. 제정해 주세요.”

우리의 청이 받아들여져 이때부터 10월30일이 ‘장애인재활의 날’로 선포돼 지켜져 오고 있다. 여기에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1030 슬로건도 반드시 따라붙는다. 그리고 장애인 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더 많이 사주는 ‘착한 소비운동’을 전개해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소비자는 장애인이 만든 물품에 대해 오히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써보지도 않고 제품의 질이 나쁠 것으로 단정하곤 했다. 내가 소비하는 제품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2013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에덴하우스와 ‘형원’을 방문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시설을 한번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지켜주신 것이다. 이미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오신 박 대통령에게 나는 한결같이 장애인 고용 창출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것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을 펴줄 것을 부탁했다. 박 대통령도 이에 공감을 표시하고 장애인 생산품의 판로 개척에도 관심을 갖고 장애인의 자활과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

나의 사업과 활동이 폭넓게 알려지면서 국가에서 주는 훈장(국민포장 및 석류장)과 도산봉사상, MBC사회봉사대상 등을 받았다. 부끄러웠지만 한편 장애를 딛고 헌신한 것에 대한 선물이라는 생각에 기쁘게 수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수상소감에서 이 말을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저는 지금도 세끼 밥을 제 손으로 먹지 못하고 책 한 권, 신문 한 장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겐 꿈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바로 세우고 자활하도록 부축해 주는 것입니다. 그 열정과 희망이 오늘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장애인의 자활에 힘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