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 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9장 1∼16절
말씀 : 사울은 주의 제자들을 향해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등등하다’는 표현은 오직 그 생각으로만 꽉 찬 상태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 생각해 기독교를 핍박하는 데 비상한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많은 성도들을 죽였고, 옥에 잡힌 성도들을 고문해 강제로 예수를 모독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청해 멀리 외국의 성까지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기 위해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이 생각뿐인 사울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훗날 바울은 자신이 본 빛에 대해 천지창조 당시 “빛이 있으라”고 명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자기에게 비추셨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고후 4:6). 이처럼 그 빛은 흑암 가운데 있던 자신의 삶을 광명 세상으로 재창조하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빛과 함께 하늘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듣고 두려움 가운데 “주여 뉘시오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여기서 ‘주여’란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그 당시 랍비들은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이 말은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가 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 음성을 통해 그때까지 자기가 박해했던 예수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됐습니다. 사울을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에는 진노가 아니라 긍휼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행 26:14). 예수님은 사울이 자기를 핍박할 때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한편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간 사울의 마음은 완전히 깨어지고 낮아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했습니다. 고래 뱃속에서 요나가 한 기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구하기 위해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처럼 신앙과 인격이 하나인, 경건하고 칭찬 듣는 사람(행 22:12)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고 사울에게도 아나니아가 찾아갈 것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두려워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세밀하게 교통하고 계신 것입니다.
깊은 신앙인인 아나니아에게도 박해자인 사울의 현재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눈에는 그가 이방인을 위해 당신이 택한 소중한 그릇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는 현재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은 미래까지도 아십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저희 가족이 사울처럼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도리어 우리의 길과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신뢰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지현 목사(서울 다음세대교회)
[가정예배 365-4월 13일] 더 높으신 하나님의 길과 생각
입력 2016-04-12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