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도 모르는 초등학생의 댓글에서부터 걸핏하면 싸잡아서 야단만 치는 사설들까지, 한국 정치에 대한 경멸의 말이 차고 넘친다. 정치인들의 잘못도 많지만 북한이나 짐바브웨, 국회가 거수기 노릇 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언변에 좌우되는 미국보다 오히려 훨씬 나은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정치혐오증이 팽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에 대한 비난은 사색당파를 만든 조선시대 사대부들에 대한 식민사관의 비난과 사뭇 닮아 보인다. 적어도 정조 시절까지는 왕권을 견제하는 서원과 선비들이 긍정적으로 정치적 기능을 했다고 본다. 만약 정치권에서 갈등과 차이가 일체 드러나지 않는다면 독재란 뜻이다. 김정은 눈치만 보는 북한에 입법부가 있을 수 없고,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의 시대에는 아예 반대만 조금 하면 모두 수용소에 다 갇히게 되었으니 겉으로 보는 정치판은 상당히 조용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세비는 다 받으면서 일은 않는다는 비난도 그렇다. 국회의원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지 않고 후원금을 받지 않고 국가가 주는 월급으로만 산다면 사실 지역구의 그 많은 경조사나 행사에 참석하기 힘들 것이다(일절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면 아마 지역구민들은 불만이 많을 것이고 지역 민심을 읽을 방법도 없다). 법안을 만들어 상정하면 득달같이 통과시켜야 된다는 논리도 위험하다. 아주 평화롭게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던 유신헌법을 지금 쓰겠다면 제정신인가?
자신의 지역구나 정당의 이익을 고려해 법 통과를 지연시키는 경우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사람들과 지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현실적으로 그 과정을 생략한다면 그 또한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법의 발의나 통과가 우리보다 결코 빠르지는 않다. 살인적인 의료비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의 헬스케어가 통과되지 못하는 것이 그 예다. 또 아무리 훌륭한 법이 있어도 행정부나 국민들의 실천 의지가 박약하면 결국 사문화되고 마는 게 법의 운명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위를 이용해 엄청나게 큰 사익을 챙겼던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어렵게 살지만 일제와 부패한 정권에 야합해 온 이들이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으니 정치 혐오에 빠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타락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런저런 제약 속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에 정치권에 대한 대안 없는 혐오와 무관심은 독재의 씨앗이 자라는 토양이 될 수 있다.
대중은 무지하므로 소수의 엘리트나 특정 집단이 일방적으로 다스려가야 한다는 낡은 논리나, 어차피 정치인들은 썩은 집단이니 아예 관심 없다는 새롭게 유행하는 논리는 모두 극단화의 오류에 빠져 결국 우리 미래를 망친다.
국민들이 투표로 뽑은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들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치혐오증의 뿌리는 스스로에 대한 비하와 자포자기와 연결될 수도 있다. 한때는 쓰레기통에서 민주주의가 피겠느냐는 비아냥도 그냥 삼켜야 했던 가난하고 힘없던 우리지만 이제는 인종차별, 실업, 테러리즘, 난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구미의 정치를 걱정할 정도로 참 멋지게 성장했다. 우리가 뽑아 놓은 정치인들의 잠재력이 제대로 꽃필 수 있도록 감시와 비판과 함께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도 함께 내면 좋겠다. 나와 정치적 이념은 다르더라도 일단 선출이 되면 국민들의 심부름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진사회의 특징이다. 정치적 대립자(opponent)는 적(enemy)이 아니라 서로에게 꼭 필요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정치혐오증의 심리학
입력 2016-04-12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