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은행 “내일 오시죠”… 준비 안된 ‘일임형 ISA’

입력 2016-04-12 04:04
은행에서도 일임형 개인자산관리계좌(ISA) 판매를 시작한 11일 국민일보 백상진 기자가 서울의 한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은행에 자산을 일임하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 증권사만 다루었던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신한·KB국민·우리·IBK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에서도 출시된 첫날인 11일 일선 영업점에서는 상품 판매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서울 남서부의 한 은행 지점을 찾아 가입을 문의하자, “내일 오시면 안 되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담 창구에 앉아 일임형 ISA에 대해 묻자 직원은 ‘신탁형’ ISA에 대한 안내장부터 줬다. 신탁형은 지난달 14일부터 팔고 있는 상품이고, 일임형은 이날 첫선을 보인 신상품이다. 직원은 10여분간 계속 단말기 자판을 두드렸지만, 만족스러운 안내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설명을 잘해드려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내일 다시 오면 안 되느냐”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은 “내부적으로는 모델 포트폴리오(MP)가 나와 있는데 오늘 아침에 서류를 받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은행은 그동안 투자일임업을 해본 적이 없다. ISA에 한해서만 일임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신탁형 ISA가 고객이 직접 투자할 곳을 고르는 형태라면, 일임형 ISA는 금융기관이 알아서 목돈을 굴려준다. 하지만 알아서 해주리라 믿고 맡기기엔 출시 첫날 모델 포트폴리오 외에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

다른 은행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임형 ISA 가입 상담을 받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대뜸 약관을 내밀었다. ISA 상품 관련 법률용어가 빼곡히 적힌 서류를 몇 장 넘긴 뒤에야 고위험·중위험·저위험·초저위험 등 투자자 성향별 MP가 붙어있는 종이를 찾을 수 있었다. “MP 수익률에 따라 편입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 은행 직원은 “포트폴리오 비율은 조정이 안 된다”고 말했다. 틀린 설명이다. 일임형의 경우 고객의 요청이 없어도 금융기관이 위험자산군의 비중을 조절(리밸런싱)할 수 있다.

신탁형 ISA 출시 때 불거졌던 불완전판매 우려도 여전해 보였다. 또 다른 은행의 창구에서는 “가입에 필요한 소득증빙 서류가 없다”고 하니, “은행 옆에 세무서가 있으니 위임장을 써주면 직원이 해결할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대신 서류를 준비해 줄 테니 일단 가입부터 하란 뜻이다.

은행들이 야심 차게 모델 포트폴리오를 내놨지만 막상 상품군을 보면 펀드와 지수추종형 상장지수펀드(ETF), 머니마켓펀드(MMF) 등 특정 상품위주로만 구성돼 있다. 은행마다 비슷비슷한 상품을 가지고 판매 경쟁만 벌인다는 의미다. 저위험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겐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은 채권형펀드 비중을 포트폴리오에서 절반가량으로 높이고 있다. 고위험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겐 위험도가 큰 해외 주식형 펀드 비율을 높이는 식으로 MP가 구성돼 있다. 신탁형 ISA의 경우 같은 은행의 예금에 돈을 넣을 수 없도록 막아 놔 다른 은행이나 저축은행의 예금을 끌어왔지만(적금 제외), 일임형에서는 예·적금이 모두 제외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4일부터 지난 8일까지 4주 동안 ISA 누적 가입자 수는 139만4287명(가입금액 8763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4주차(4∼8일) 주간 가입자 수는 16만5564명으로 3주차 가입자 수(30만2620명)의 절반 수준이어서 증가 폭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