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신중년’ 수습기자 “콜라텍 취재하고 싶어”

입력 2016-04-12 04:16
‘시니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나대순 김문숙 이영림씨(왼쪽부터)가 6일 서울 영등포구 취재현장에서 수첩, 카메라 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고, 노인 아니에요. ‘신(新)중년’이지.”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위드네이버’ 사무실에서 만난 박태순(64)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노인이 되려면 아직 10년이나 남았다”고도 했다.

박씨는 ‘시니어 기자’다. 예비 사회적기업인 위드네이버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영등포우리신문’에 지난해부터 영등포구 소식을 전하고 있다. 36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일하고 2008년 대령으로 예편한 그의 점퍼 안주머니엔 수첩과 펜이 들어 있었다.

위드네이버는 오는 14일 노인이 쓰고 노인이 읽는 노인 전문잡지 ‘행복한 실버’를 발간할 예정이다. 잡지 수익금은 기사를 쓰고 잡지를 판매한 노인들과 나눈다. 지난달엔 백발의 ‘수습기자’ 15명을 새로 뽑았다. 한창 손주 재롱을 볼 나이에 현장을 누비는 일을 자청한 이유는 뭘까.

취재수첩은 카톡, 동영상 편집은 기본

이영림(63·여)씨는 지난달 수습기자가 됐다.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정식 시니어 기자가 된다. 남편 사업을 돕던 그가 환갑이 넘어 이 일에 도전한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씨는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재밌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보다 지원했다”고 했다.

52세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적극적인 이씨는 요즘 페이스북과 블로그까지 배우고 있다. 노인이 많은 종로에 가서 노인들과 ‘사는 얘기’를 나누고, 노인 콜라텍에도 들어가 취재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노인이 직접 노인을 취재한 경우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문학소년’이던 나대순(69)씨는 부모의 반대로 국문과에 가지 못하고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30여년 건축설계사로 일하고 나서 이제야 좋아하던 글쓰기를 하게 됐다.

나씨는 휴대전화와 DSLR 카메라로 ‘무장’하고 현장에 나선다. 바쁠 땐 취재한 내용을 휴대전화에 메모한 다음 자신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다. 카톡이 취재수첩인 셈이다. 현장에선 동영상 촬영도 한다. 나씨는 2013년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이별을 준비하다’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탄 이력도 있다. 소뇌위축증을 앓던 생전의 아내 모습을 18년 동안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직접 편집도 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존엄사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씨는 이제 글과 사진·영상으로 노인들의 소소한 얘기를 전할 생각이다. 나씨는 “주변에서 별걸 다 한다고 하던데 나는 재밌기만 해요”라며 웃었다.

“글로 쓰면 좀 먹힐까 해서”

김문숙(78·여)씨는 최고령 수습기자다. 42년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2000년 퇴직했다.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해 왔다. 곁에서 지켜보니 다문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생생히 보였단다.

“처음엔 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 틀어놓고 펑펑 울면서 응어리를 풀고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김씨는 다문화 여성들의 아픔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관공서를 찾아가 이런저런 지적도 했다. 그러나 바뀌는 게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기자가 되기로 했다. 우리 이웃의 힘들고 아픈 얘기를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이길상(55) 위드네이버 대표는 “시니어 기자를 하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말도 많이 해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고 노인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며 “노인으로 노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글·사진=김판 임주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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