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한국 정치에서 여러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집권당은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총선을 통해 향후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곤 했다. 반면 야당은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여 정권교체의 희망을 지지층 안팎에 심어줬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및 정치인들이 진입해 기존의 낡은 정치를 자연스럽게 물갈이하는 효과를 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3일 치러지는 20대 총선은 어느 것 하나 충족하지 못한 역대 최악의 선거로 기록될 만하다. 여야의 주요 정당들은 공천과 선거운동에서 국민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주지 못했다. 오로지 자기 계파의 이익만을 챙기는 소인배 정치의 전형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친박계에 4·13총선은 계파 의원을 늘리는 기회에 불과했던 것 같다. ‘진박(진실한 친박)’의 등장과 비박계 공천 학살, 그리고 ‘옥새 파동’은 우리 정치를 십수 년 후퇴시키기에 충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운동권당이라는 꼬리표를 여전히 떼어내지 못한 채 야권 후보 단일화에만 목을 매는 모습을 연출했다. 새 정치를 하겠다고 모인 국민의당도 내부 계파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막장 공천극을 끝낸 여야의 공식 선거운동은 한편의 코미디에 가깝다. 텃밭인 영·호남을 향한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읍소와 구걸, 협박은 낯이 화끈거릴 정도다. 막판에는 케케묵은 색깔론과 지역주의, 인신공격도 모자라 해괴한 금괴 논란까지 벌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이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호(號)’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지를 이번 선거에서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국정 운영의 방향과 목표라는 비전이 실종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 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저성장 경제가 고착화됐다는 진단도 무성하다.
밖으로는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대남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재원 조달 방안도 없는 수십조(兆) 단위의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주요 정책을 놓고 토론과 논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패거리 공천과 시시각각 변하는 표심에만 매몰돼 있으니 이런 국가적 현안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대신 국민들이 정당과 정치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총선 이후 불 보듯 뻔한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더민주 내 친노-비노 간 충돌은 우리 사회를 또 한 번 소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 사이 주요 민생·경제 법안은 20대 국회 초반에도 겉돌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고비용·저효율 국회라는 오명을 쓴 19대를 넘어설 수 있다. 도대체 우리 국민들은 언제쯤 선거를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하다.
[사설] 정치권은 20대 총선에서도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입력 2016-04-11 17:30 수정 2016-04-12 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