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와 노동계의 올해 임금협상 쟁점 중 하나가 대졸 초임 삭감 문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6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에는 임금동결,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과 함께 과도한 대졸 초임 조정이 들어 있다. 즉, 대졸 정규직 신입근로자 초임이 3600만원 이상(고정급 기준)인 경우 이를 삭감해 그 재원만큼 신규채용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의 과도한 초임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켜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과도한 연봉을 받는 경영진은 놔두고 신입사원 초임만 조정하겠다는 것은 인건비 절감을 통해 기업 이윤을 늘리려는 꼼수라고 반박한다. 노동계가 강력히 반대하는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도 핵심 쟁점이다. 이로 인해 올 임협은 난항을 예고한다.
첫 격돌은 대졸 초임이 5000만원 안팎인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열릴 예정이던 금융권 노사의 첫 산별중앙교섭이 사용자 측 불참으로 불발된 것. 이는 산업은행 등 7개 금융공기업이 산별 교섭을 포기하고 각사 노조와 개별협상을 벌이기 위해 지난달 말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에서 탈퇴한 게 원인이 됐다. 이에 금융산업노동조합이 금융공기업 등 사측 대표자 전원이 협상장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한 반면 사용자 측은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파행이 이뤄졌다. 대졸 초임 삭감을 둘러싸고 대립 중인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을 들어본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 이래서 찬성
류 기 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과도한 대졸 초임 조정 재원으로 신규채용 늘리면 청년실업 해소”
올해 2월 청년 실업률이 12.5%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구직활동을 포기한 계층까지 고려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23%를 넘고 있다. 청년 취업이 한파를 넘어 빙하기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청년 실업이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정년퇴직으로 인한 결원을 신규채용을 통해 충원하는 방식으로 인력 규모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향후 3∼4년간 정년퇴직자가 없어지는 기업이 많아 신규채용 유인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규채용에 노력하고 있으나 작금의 경제상황이나 노동시장 환경은 청년실업 해소를 쉽지 않게 만들고 있다.
경영계가 제시한 과도한 대졸 초임 조정은 이러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인건비를 절감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근 과도하게 높아진 일부 기업의 대졸 초임을 조정해 그 재원만큼 신규채용을 확대함으로써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더불어 대·중소기업 간 초임 격차를 해소해 최근 심화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고자 하는 취지도 담겨 있다. 기업 규모, 고용 형태 등에 따른 과도한 임금격차가 소득불균형을 초래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이 아닌, 대졸 초임을 3600만원 이상(고정급 기준) 지급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권고한 것은 이에 기인한다.
지난해 300인 이상 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대졸 사원 초임은 초과급여를 빼고도 평균 4075만원, 변동급을 제외한 고정급이 평균 3646만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초과급여를 뺀 근로자 전체 평균 임금이 3057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너무 과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대졸 초임과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략적 비교지만 대기업 대졸 초임의 절대적 수준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40%가량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2014년 기준). 반면 5인 미만 기업의 정규직 대졸 초임은 고정급 기준 1988만원으로 300인 이상 기업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극단적인 예로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친구 2명이 어느 규모의 회사에 취업하는가에 따라 임금 수준이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것이다.
과도한 대졸 초임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았으나 채우지 못한 일자리가 8만3000개였으며, 이 중 94%가 300인 미만 기업 일자리였다. 일자리를 채우지 못한 이유는 주로 ‘임금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 기대와 맞지 않아서’로 나타났다. 청년 구직자들이 대기업 취업에 매달리고 중소기업을 꺼리면서 실업난 속에서 구인난이 발생한 것이다.
또한 높은 대졸 초임은 대학진학 유인으로 작용해 학력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2%에서 2015년 70.8%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학력자 초과공급은 인력수급 미스매치를 초래하고, 대졸자의 취업경쟁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대졸 실업자의 기회비용이 연간 최대 19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노동시장의 최대 현안인 일자리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2개 대책으로 해소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경제주체들의 노력과 과감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임금안정과 과도한 대졸 초임 조정을 통한 신규채용 확대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 이래서 반대
이 정 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경제 민주화·노동기본권 보장이 기업간 임금격차 완화 근본 대책”
임금격차는 합리적 이유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로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함으로써 개인, 기업, 국가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특히 그 격차가 이른바 합리성에 근거한 차이를 넘어 차별이라는 요인이 가미될 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나라의 임금격차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성별 학력별 산업별 직종별 모든 영역에서 축소돼 왔지만 유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만 수십년간 유지 혹은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중소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대기업의 62% 수준으로 2008년 이후 가장 낮다. 더욱이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0∼40%에 불과하다. 생산물 시장을 반영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 때문이다.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는 인적자원의 우수성, 생산물 시장에서의 독과점적 지위와 원하청 구조, 높은 자본장비율, 노동자 목소리 대변체계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업 및 노동정책 측면에서 임금격차 완화 방안은 대기업 절대 우위의 원하청 구조를 상생의 협력구조로 바꾸고, 생산물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제한하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 임금지원 등을 통한 중소기업 임금상향 정책 및 노동조합 활성화 등의 구조개선 방책이 제시될 수 있다. 대기업 노동자의 실질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및 생활임금 대폭 인상 등의 구조조정 촉진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올해 임금을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하고 신입사원 초임이 3600만원 이상일 경우 과도한 임금을 조정할 것’을 회원사들에 권고했다. 물가를 감안할 경우 임금을 동결하라는 것은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라는 말이다. 기준을 3600만원으로 정한 근거도 없거니와 경총의 반시장적·반경제적 주장은 결국 배당 부자인 재벌 대기업 총수와 그 일가의 배만 불리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로 귀결될 것이다. 신규 채용을 핑계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조정하겠다는 것 역시 사실상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인건비를 절감해 기업의 이윤을 늘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신입사원 임금삭감은 ‘신입사원의 경우 불이익 변경된 취업규칙 적용의 효력이 인정된다’는 고용노동부 지침이 현장에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경제가 어렵고 기업 경영이 어렵다면 수백억원대의 보수를 받는 대기업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의 급여를 깎는 게 순서일 것이다. 경총이 일반 직원에 비해 과도한 연봉을 받는 CEO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애꿎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임금 조정을 권고한 것은 전형적인 ‘슈퍼갑’의 횡포라 하겠다.
청년들이 고용 절벽에 신음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 완화와 신입직원 채용을 이유로 한 노동자 임금삭감 시도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정책이야말로 내수를 촉진시켜 경제를 살리고 청년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다. 구시대적이며 반시장적인 임금 억제 정책보다는 800조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투자해 청년 고용을 확대하고,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 등의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 기업 규모 간 올바른 임금격차 축소 정책이다.
[이슈 논쟁-‘대졸 초임 삭감’] 이래서 찬성 vs 이래서 반대
입력 2016-04-12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