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65> 종말영화의 종말?

입력 2016-04-11 17:40 수정 2016-04-11 21:12
‘제5의 침공’ 포스터

‘제5의 침공(The 5th Wave)’을 봤다. 지구 종말(apocalypse) 영화를 기본 뼈대로 외계인 침략영화, 특히 어린이들을 외계인과의 전쟁에 동원한다는 ‘엔더의 게임’에 여자아이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투쟁의 선봉에 나선다는 ‘헝거게임’ 같은 청소년 모험영화를 적당히 뒤섞어 놓은 내용이었다.

이 엉성한 영화를 보면서 반작용으로 훌륭한 종말영화가 머리를 스쳐갔다. 좋은 종말영화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의 일단을 제공한다. 그 시작은 오래됐다. 1933년 펠릭스 피스트 감독의 ‘대범람(Deluge)’.

쓰나미로 인간세계가 파멸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그때 벌써 범람하는 바닷물이 뉴욕시를 삼키는 장관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후 종말영화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함께 유토피아적 멋진 미래의 환상에 젖어있던 1960년대까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 몇 개만 들면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 ‘그날이 오면(1959)’ ‘지구 최후의 사나이(1964)’ 정도.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과학기술의 역기능이 두드러짐에 따라 종말영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말 원인도 다양했다. ①핵전쟁 및 방사능 낙진 ②외계인 침공 ③좀비 창궐 ④각종 질병의 만연 ⑤환경오염 및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 ⑥로봇의 반란 ⑦인간 유전자 조작 오류 ⑧초자연적 현상 ⑨신(神)의 심판 ⑩자원 고갈 등.

원인에 관심을 두지 않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도 있다. 코맥 매카시 원작의 ‘로드(The Road, 2009)’. 원작과 영화 모두 좋은 평을 받았다. 반면 원작은 걸작임에도 형편없는 영화로 개악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할란 엘리슨의 걸작 중편을 배우 L Q 존스가 감독한 ‘소년과 개(1975)’, 데이빗 브린의 멋진 소설을 역시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싸구려 서부활극으로 개작한 ‘포스트맨(1997)’이 대표적.

앞으로도 종말영화들은 끊이지 않고 나오겠지만 이런 영화들과 ‘제5의 침공’을 보노라면 마치 ‘종말영화의 종말’이 온 것 같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