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스마트폰이 맛이 갔는지 입력해 놓은 이름이 안 뜨고, 번호만 달랑 떴다. 취재 끝나고 회사 들어올 테니 저녁 같이 먹자는 선배 전화를 기다리던 터라 “네” 하고 공손히 받았다. 그런데 웬걸.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 아들한테 ‘네’가 뭐야?” >□<(황당함을 표시하는 이모티콘)
번호를 제대로 못 보고 서둘러 전화를 받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들한테도 존대하는 ‘예의 바른 엄마’가 됐다.
정보기술(IT) 발전은 우리가 의지해온 기억의 수단들을 밀어냈다.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수첩, 명함집, 머릿속의 기억회로까지. 더 이상 수첩에 메모하거나 외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모든 정보는 컴퓨터에, 스마트폰에, 클라우드 서비스(영화·사진·음악 등 미디어 파일, 문서, 주소록 등 사용자의 콘텐츠를 서버에 저장해 두고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를 포함한 어느 기기에서든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들어 있다. 머리를 텅 비우고 클릭 한 번이면 전화번호, 약속 일정, 기념일 등 모든 정보를 호출해낼 수 있다.
기억력이 정보 저장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문맹률이 높았던 때에도 기억은 유효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퇴화의 길로 들어선 지 오래다. 당신은 몇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가까운 지인의 전화번호조차 떠올리지 못한 경험이 있을 거다.
인터넷 세상에는 검증되지 않은 자료들이 넘쳐난다. 초등학교 숙제부터 대학 리포트까지 인터넷이 대신해주는 시대다. 스스로 공부하고 지식을 외우고,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널린 자료들을 ‘짜깁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위키피디아나 구글 등은 그나마 정보의 출처를 밝혀주지만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사들에 올라오는 글들은 정체불명의 가짜 정보인 경우도 적지 않다. 디지털 세대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허상과 거짓 정보를 일회성으로 소비하고 끝낸다.
‘디지털 혁명의 미래’를 쓴 고든 벨과 짐 겜멜은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사람의 기억을 전자기억으로 만들어 ‘완전한 기억화(Total Recall)’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억을 하기 위해 애쓰는 수고로움보다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난달 이세돌 9단을 눌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인공지능(AI) 알파고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하는 컴퓨터에 불과하다. 인간이 3000만 대국을 입력하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파고는 인간을 이겼다.
2년 전쯤인 2014년 6월 미국의 블라디미르 베셀로프와 우크라이나의 유진 뎀첸코가 공동 개발한 AI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이 처음으로 AI 판정시험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을 때 세상은 감탄했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잠시였다. 과학잡지 와이어드는 13세 구스트만과의 대화를 통해 알고리즘의 맹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스트만이 심사위원 33%를 속인 것에 불과하다며 “실제 튜링 테스트에서는 F학점을 받았다”고 혹평했다.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만든 엘론 머스크는 “5년 혹은 10년 안에 인류에게 중대한 위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AI를 “악마를 소환하는 일”이라고 했다. AI가 발전하면 로봇 스스로 인간을 죽이는 게 합리적이란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기를 포기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두뇌를 빼앗겨버린 인간이 자신이 만든 인터넷 세상에 점령당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명희 디지털뉴스센터장 mheel@kmib.co.kr
[돋을새김-이명희] 기억하지 않는 사회
입력 2016-04-11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