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거주 여든아홉 위안부 할머니의 ‘슬픈 귀향’

입력 2016-04-11 04:09
의료진이 10일 대한항공 KE881편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인공호흡기 도움으로 숨을 쉬는 하 할머니를 중국 우한 동지병원에서 서울 중앙대병원 중환자실까지 이송하기 위해 정부와 대한항공 등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귀향 작전’을 펼쳤다. 인천공항=김지훈 기자

17세에 중국으로 끌려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9) 할머니가 10일 환자 운송용 침대에 누워 ‘귀향’했다.

하 할머니의 귀향은 군사작전 같았다.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없고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숨을 쉬는 중환자를 비행기에 태워 옮기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지난 2월 15일 계단에서 넘어져 폐가 갈비뼈에 찔리는 부상을 입었다. 평소 고혈압 뇌경색 천식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낙상사고로 폐와 신장 기능까지 약해졌다. 중국 우한 동지병원에서 서울 중앙대병원 중환자실로 오기까지 6시간여 내내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이날 동지병원에서 구급차로 우한공항으로 이동, 대한항공 KE881편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한항공은 평소 이 노선에 투입하던 소형 B737을 중형인 A330으로 교체했다. 또 기내 환자용 침대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좌석 6개를 뜯어냈다.

인천공항에서 할머니는 일반 승객이 다 빠져나간 뒤 리프트를 통해 지상으로 옮겨졌다.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는 경찰 순찰차가, 올림픽도로에서는 사이드카가 구급차를 호위했다. 병원에선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할머니를 맞았다. 중국을 왕복하며 이송을 책임진 박병준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비행에 따른 저혈압이나 부정맥 등을 우려했으나 안정된 상태로 이송이 진행됐다”면서 “병세가 깊어 치료가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이송은 여가부와 중앙대병원, 대한항공, 경찰, 외교부, 법무부가 힘을 모은 결과다. 중앙대병원은 박병준 교수와 박태연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중환자실 간호사 2명 등 4명을 중국에 보냈다. 대한항공은 의료진과 할머니 가족 2명(셋째딸과 손녀)의 항공료를 받지 않았다.

충남 서산에서 1927년 태어난 하 할머니는 17세 때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이후 고향에 돌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중국인과 결혼해 전처의 딸 셋을 키웠고 방직공장에서 일해 돈을 벌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 거류증으로 살아왔다. 199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해 2003년부터 2년여간 국내에서 지낸 적도 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송에 동행한 셋째딸은 “어머니가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을 준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하 할머니는 중국에서 외국인 신분이어서 6000만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내야 했다. 그동안 정부가 4800만원을, 국내 비영리단체와 중국 위안부 연구자들이 1200만원을 지원했다. 국내에서는 의료급여수급자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는 본인 부담이 있을 경우 지원하고, 필요 시 요양병원 입원비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임관식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치료가 끝난 뒤 국내에 정착하길 원하면 정부가 도움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