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에 휩싸인 보조사업자, 사후관리에 미흡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연간 60조원으로 불어난 국고보조금이 곳곳에서 유용된다는 문제제기는 그간 충분히 이뤄졌다. 세금을 어떻게 올바르게 쓸 것인지 지혜를 모으는 작업이 지금 필요한 일이다.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형진휘 대검찰청 과학수사2과장,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장, 박찬우 내세금국민감시단 대표가 참석했다.
남도영 사회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2014년 말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 등 잇단 대책에도 비리가 끊임없다.
△형진휘 검사=관리 시스템이 갖춰질수록 그에 대응한 ‘불법의 상생’이 일어난다. 업체끼리 불법을 상부상조하는 행태가 많이 발견되고, 정부의 대책에 맞춰 범행 수법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박찬우 대표=보조사업자 선정 단계부터 검증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 담당 공무원의 업무 과다를 틈타 국민일보가 소개한 ‘보조금 에이전트’까지 생기는 마당이다. 총체적 부실이라 할 만하다.
△김재훈 교수=보조금 중 정부출연금은 사실상 기부금 형식으로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보조금 증가율은 여타 정부지출에 비해 월등하다. 다양한 보조사업의 용도만큼 대안도 많이 필요하다.
-이런 경향이 오래 지속되는 원인은 뭔가.
△박 대표=공무원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검증했다면 이 정도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고를 받아보면 비단 보조금뿐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재원 투입 대상자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발견된다. 너무 많은 사람을 일선 읍·면·동이 관리하다 보니 발생한 일이겠지만, 실제 받아야 할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최종 전달자들이 바로잡아야 한다.
△형 검사=검찰과 경찰 수사 결과 2013년 3344명의 보조금 편취사범을 입건, 125명을 구속했다. 2014년에 5552명을 입건하고 253명을 구속했다. 부정수급액은 1670억원에서 3119억원으로 늘었다. “요건만 맞으면 쉽게 받을 수 있고, 곧 나의 수익”이라는 보조사업자들의 인식이 공공연하다.
△김 교수=보조금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도 심각하지만, 그에 앞서 기획 단계도 고민해야 한다. 고도성장으로 정부 조직이 커지면서 보조사업이 많아졌고 비리도 늘고 있다. 어떤 사업에 보조금을 투입할 것인가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재정 누수를 근절할 방안은 뭔가.
△김 교수=불법을 저지르겠다고 덤벼드는 이를 막을 방법은 없지 않나 싶다. 보조사업의 규모가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관행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정보 공개로 투명성을 강화해 국민의 공익적 신고가 많아지도록 하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물론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와 접점을 찾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박 대표=동의한다. 현재는 정보 공개 청구를 하더라도 많은 정보가 제한된다. 아예 보조금과 관련한 모든 내역을 투명하게 ‘오픈’할 필요가 있다. 일부 직업훈련원이나 어린이집의 경우 대상자 수를 늘려 허위로 돈을 챙기는 수법이 많았다. ‘몇 명에게 얼마를 줬다’는 식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경로에서 보여줘야 한다. 중복·과다 지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형 검사=적발됐을 때의 고통과 비용 부담에 비해 기대이익이 크기 때문에 부정수급 범행이 계속된다. 제도 완비에도 불구하고 기존 부패의 3분의 1가량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필요한 것은 내부고발자의 정확한 제보다.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되레 불이익을 주는 관행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대응 방안을 요약해 달라.
△박 대표=세금이 여러 분야에서 새는 현상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고 본다. 국민이 맡긴 돈이라고 무겁게 인식하는 공무원의 사명감, 부정수급은 끝까지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는 수사기관의 의지에 기대를 건다. 행정자치부는 보조금 교부 직후 수급자 교육을 실시하는 ‘공익사업 지원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범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김 교수=제도는 갖춰졌다. 결국 수급자 의식이 중요하다. 보조사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보의 비대칭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건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범행이 어려워진다. 보조금 중 정부출연금 분야에서 상당히 비효율이 많다는 점을 덧붙여 지적하고 싶다.
△형 검사=시스템으로 걸러지지 않는 부패에 대해 검찰은 끝까지 수사할 것이다. 국고보조금 비리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수사 역량 집중 사안에 선정됐다. 이 부패에 엄정 대응하는 일은 세금 낭비를 막고,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수사로 확인한 부당이익은 철저하게 추적해 보조금 관리·감독 기관이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눈먼 돈’ 국고보조금] “내역 투명하게 공개… 내부고발자 불이익 없어야”
입력 2016-04-11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