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직 대통령의 첫 미얀마 방문 및 국교정상화 선언(2012년 11월), 적대국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2015년 7월), 국교정상화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서 83년 만의 쿠바 방문(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기 임기에서 가장 중요시한 ‘(불행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not imprisoned by past) 적극적으로 화해를 꾀해 새 시대를 연다’는 외교정책의 대표적 성과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또 한번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성과를 내놓을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6∼27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할 때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들르는 문제를 고민 중이다. 이 공원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숨진 희생자 14만명을 기리는 곳이다.
외국 정상이 찾을 만한 곳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미국이 과거 원폭 투하를 일본에 공식 사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미국은 ‘원폭 투하는 일본이 야기한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희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때문에 양국이 가장 돈독한 우방이지만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또 다른 중요한 외교적 업적은 ‘핵무기 없는 세상 만들기’ 비전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워싱턴DC에서 핵무기 감축을 위한 핵안보정상회의도 개최했다.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제시한 비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때문에 백악관 참모 중 일부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아픔이 있는 히로시마를 전격 방문해 핵무기 감축 어젠다를 강조할 경우 어떤 회의나 이벤트보다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과 논란 외에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다. 무엇보다 히로시마 방문이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주변국 반대와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안보법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아베는 평화헌법을 무력화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일본을 바꾸고 있다.
미국에서 대선이 진행 중이라는 점도 걸린다.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의 지난 8년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외교”라고 비난했는데 히로시마에서 평화공원을 방문하면 공격을 피할 길이 없다. 공화당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을 만날 때 고개를 숙인 일을 두고서도 굴욕외교라고 비난했다.
일본 역시 고민스럽긴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핵무기를 계속 확대 중인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본 방위는 일본 스스로 하라”는 목소리를 키울까 걱정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오바마 ‘피폭’ 히로시마 갈까, 말까
입력 2016-04-10 20:18